▽“쌀 시장 문을 열어라”=1994년 타결된 우루과이라운드(UR) 협정에서 한국은 10년간 시장 개방을 미루는 ‘쌀 관세화 유예’를 받았다. 쌀 관세화는 관세를 매기는 방식의 시장 개방을 뜻한다.
한국은 UR 협정 10년째인 올해 세계무역기구(WTO)의 개별 회원국들과 양자(兩者)협상을 벌여 시장 개방을 결정해야 한다.
이에 따라 통상교섭본부는 지난달 20일 WTO 사무국에 쌀 시장 개방 재협상 개시 의사를 공식 통보했다. 3개월 뒤 협상 참가국이 정해지면 이르면 4월 말부터 본 협상이 시작될 전망이다.
최근 10년간 국내에 쌀을 수출해온 미국 중국 호주 태국 등 한국 쌀 시장과 직접적인 이해(利害)관계를 가진 국가에서 협상테이블에 나올 가능성이 높다.
특히 미국은 국내 쌀과 같은 자포니카 타입의 캘리포니아산 쌀을 한국에서 시판하길 원하고 있다. 또 작년에 한국을 상대로 132억달러의 무역적자를 기록했던 중국도 이를 빌미로 쌀 시장 개방을 적극 주장할 가능성이 높다.
▽협상 어떻게 진행되나=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은 △최소시장접근(MMA) 물량 확대 △관세화를 통한 쌀 시장 전면 개방 등 두 가지다.
MMA는 쌀 시장을 개방하지 않는 대신 국내 쌀 소비량의 일정 비율을 의무적으로 수입하는 제도다. 올해 한국의 쌀 수입물량은 국내 소비량의 4%에 이를 전망이다.
정부는 수입쌀을 전량 사들여 가공용으로 처리했으나 미국 등의 요구대로 MMA 물량이 8% 이상으로 늘어나면 감당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관세화를 통한 쌀 시장 개방이 더 유리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UR 협정의 관세 감축 체계를 적용하면 한국이 쌀 시장을 개방할 때 적용할 관세율은 380∼390%선으로 예상된다.
UR 협정에 따라 관세화(시장 개방)를 미뤄도 언젠가 개방할 때 적용할 관세율은 매년 낮아진다. 관세화를 미루는 동안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는 물량은 계속 늘어난다.
▽정부의 고민=쌀 시장 개방 재협상은 농민에게 미칠 충격파가 한-칠레 FTA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한-칠레 FTA에서 초점이 됐던 농산물은 배와 사과 등 일부 과수 품목이었으나 쌀은 전체 농가 소득의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수입물량 확대’와 ‘관세화를 통한 개방’ 중 유리한 방안을 골라야 하지만 어느 쪽을 선택하든 농민과 농촌 출신 국회의원의 반발이 예상된다.
안총기 통상교섭본부 WTO과장은 “쌀 시장 문제는 ‘영원히 관세화를 유예하자’ ‘쌀 시장만큼은 무조건 개방해서는 안 된다’는 식의 논리가 통하지 않는다”며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대가’를 치러야 하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서강대 안세영(安世英·국제통상학) 교수는 “전현직 대통령들이 농민에게 쌀 시장 개방의 불가피성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구조조정에 힘을 기울였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실기(失期)’했다는 느낌마저 든다”며 “한-칠레 FTA처럼 소모적 싸움을 중단하고 구조조정을 촉진하는 것만이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차지완기자 c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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