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사냥' 시대]<2>적대적 M&A , 藥인가 毒인가

  • 입력 2004년 2월 19일 19시 05분


우호적 기업 인수합병(M&A)과 달리 적대적 M&A는 일반인에게 좋게 비치지 않는다. 기업이 아닌 펀드나 개인이 주도하는 적대적 M&A를 보는 눈은 더 차갑다. 이는 전 세계적인 현상. 직업이 적대적 M&A 자체인 이들에게 ‘기업 사냥꾼(Corporate Raiders)’이라는 호칭이 붙은 것도 이런 이유다.

영화 ‘프리티 우먼’이나 ‘월스트리트’에서 기업 사냥꾼 역할을 맡은 리처드 기어, 마이클 더글러스, 찰리 신도 직업인으로서는 긍정적으로 묘사되지 않았다. 반면 기업 사냥꾼을 ‘대규모 투자자’라는 중립적인 표현이나 ‘주주 자본주의의 영웅들’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적대적 M&A에 대한 경제 전문가의 시각은 긍정론과 부정론으로 팽팽하게 나뉜다. 한국의 경제발전 단계를 감안한 적대적 M&A의 기능에 대해서는 더욱 첨예하게 맞선다.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을 유보한 전문가도 많다. 그만큼 SK와 소버린의 대결은 한마디로 규정하기 어려운 복잡한 성격을 띠고 있다.

○ 적대적 M&A에 대한 시각

긍정론자들은 적대적 M&A를 경영을 못한 경영자에게 자본시장이 가하는 벌(罰)로 해석한다.

정광선 기업지배구조개선지원센터 원장은 “적대적 M&A의 대상은 보통 경영자의 도덕적 해이나 무능으로 잠재가치를 발휘하지 못해 주가가 저평가돼 있는 기업”이라며 “라이벌 기업이나 기업 사냥꾼은 이런 기업을 찾아내 공격함으로써 자본시장에 이를 알리는 일종의 ‘신호’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또 적대적 M&A에 성공해 능력 있는 경영자가 문제의 기업을 효율적으로 분할하거나 경영함으로써 주가가 오르는 것은 물론 경제 전체의 효율을 더 높인다는 것이다.

특히 경영능력도 없이 경영자 자리에 오른 일부 재벌 2, 3세들이나 총수의 전횡으로 기업의 자원이 효율적으로 이용되지 않는 기업이 적지 않은 한국에서 적대적 M&A는 긍정적인 기능이 크다는 주장이다.

반면 부정론자들은 “이론과 달리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반박한다.

적대적 M&A를 긍정적으로 보는 미국과 영국에서도 비판적인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케임브리지대 아짓 싱 교수는 그의 논문에서 “적대적 M&A로 대표되는 주식시장의 상벌기능이 작동하려면 기업의 수익성과 경영자에 대한 정보가 상세히 알려져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 적대적 M&A 과정에서 사회 전체가 얻는 이익보다는 비용이 크다는 것.

중앙대 박찬희 교수(경영학)는 “소규모 경제인 한국에서 M&A가 활성화되면 결국 한국의 주요 기업들은 외국 자본에 무방비로 노출된다”며 “기업의 경영자들이 경영보다는 경영권 방어에 골몰하거나 적대적 M&A에 대비해 투자보다는 현금 보유를 선호하는 등 부작용이 더 크다”고 주장했다.

○ 기업의 주인은 누구인가

적대적 M&A에 대한 전문가의 시각이 맞서는 것은 ‘기업의 주인이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서로 다른 해답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긍정론자들은 기업의 주인은 ‘주주’라고 본다. 때문에 경영자의 주된 역할은 경영을 잘해 주가를 올려 주주의 부(富)를 늘리는 것이다.

서강대 박영석 교수(경영학)는 “경제학적으로나 법적으로 기업의 주인은 손해를 볼 수 있는 위험을 안고 돈을 투자한 주주”라고 지적하고 “주주가치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채권단과 종업원, 나아가 사회 전체가 혜택을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부정론자들은 기업의 주인이 주주뿐만 아니라 종업원, 채권단도 포함되며 심지어 사회 전체로 볼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 분류되는 독일과 북유럽, 일본에서 이런 시각이 많은 편이다.

인천대 이찬근 교수(무역학)는 “주주가치를 신봉해온 미국의 중산층 생활수준은 1970년대보다 오히려 후퇴했다”며 “이는 경영자들이 주주의 이익만을 위해 단기적인 수익을 추구하면서 근로자의 몫이 자꾸 줄어들고 중장기적인 투자를 꺼리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주주이익이 사회적 이익과 일치한다는 보장이 없고 지나친 주주가치 신봉은 분배의 기능에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다는 설명이다.

부정론자들은 또 주주가치 극대화론이 금융자본이 강한 미국의 이데올로기가 짙게 배어 있는 논리라고 평가한다.

○ 주주가치와 그룹경영 시스템의 정면충돌 양측은 재벌 시스템에 대한 평가도 확연히 다르다.

적대적 M&A의 효율성을 일정 부분 인정하는 전문가들도 재벌 시스템의 긍정적인 기능이 있는 한국에서 적대적 M&A가 활성화하면 재벌 시스템이 붕괴돼 국가적으로 손해라는 입장이다.

대안연대 정승일 정책위원은 “자본, 인력, 기술이 모두 부족한 한국이 이만큼 성장한 것은 그룹경영을 통해 리스크를 함께 나누고 정부와 국민의 지원으로 해외시장에서 다른 나라 기업과의 경쟁에서 이긴 결과”라고 지적했다.

반면 다른 전문가그룹은 그룹경영 시스템의 긍정적인 기능이 끝났으며 적대적 M&A가 재벌 시스템의 비효율을 견제할 수 있다고 본다.

연세대 김준기 교수(경영학과)는 “유럽이나 일본과 달리 한국의 그룹경영은 극히 적은 지분을 가진 오너가 수십 개의 계열사를 지배하는 시스템이며 오너의 이익과 소액주주의 이익이 상충되기 쉽다”며 “적대적 M&A의 가능성은 오너가 다른 주주의 가치를 함부로 훼손하지 못하도록 견제하는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


이병기기자 eye@donga.com

김용기기자 ykim@donga.com

김두영기자 nirvana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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