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규모 자영업이 무너진다…하루 10만원 팔면 대성공

  • 입력 2004년 2월 19일 19시 19분


“하루 종일 개시를 못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냥 보니까 안 믿기죠?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우리나라 경제가 우려보다 잘 되고 있다고 웃으며 말하시던데, 정말 민생경제에 대해서 뭘 알고 말하시는지 웃음만 나옵디다.”

19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 G할인상가에서 구두잡화점 ‘끌레오’를 경영하고 있는 박모씨(40·여)는 손을 내저었다. 박씨는 “지난해만 해도 하루 50만원씩은 매출이 나왔지만 요새는 하루 세 켤레, 10만원이면 대성공이다. 관리비 25만원, 임대료 60만원은 모두 빚을 내서 내고 있다”고 한탄했다.

회현지하상가, 남대문로지하상가의 상당수 점포는 ‘점포정리 세일’ ‘무차별정리 세일’ 사인을 걸어놓고 있었지만 사람들의 발길이 뜸했다. 휴대전화 번호 연락처와 함께 ‘임대문의’ 딱지만 덕지덕지 붙은 텅 빈 점포들도 꽤 있었다.

자유시장 초입에서 20년째 의류노점상을 하고 있는 박창규씨(44)는 “지난해까지 8000원짜리 니트를 하루 100장씩은 팔았지만 요즘은 도매가 5000원에 내놓아도 20장 남짓을 판다”면서 “요즘은 ‘돈을 가진 서민’을 보기 힘들다”고 안쓰러워했다.

소규모 자영업자들이 무너지고 있다. 경기불황의 장기화로 내수 한파(寒波)가 몰아치면서 음식점, 동네 슈퍼마켓, 이·미용실, 옷가게 등 업종을 가릴 것 없이 매출이 격감하고 문을 닫는 영세 상인들이 속출하고 있다.

최근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자영업자(무급가족 종사자수 포함)는 지난해 773만6000명으로 2002년에 비해 25만여명이 줄었다. 자영업자 수는 외환위기 후인 98년과 99년 각각 16만여명과 1만여명이 감소한 뒤 다시 증가했으나 지난해 내수 불황의 골이 깊어지면서 4년 만에 처음 감소세로 반전했다.

98년 외환위기 이후 지난해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한 국내 화장품 업계에도 ‘삭풍’이 불고 있다. 서울 강북구 수유동에서 화장품 전문점을 운영하는 이모씨(32)는 “지난 몇 주간 3만원대 이상은 거의 팔리지 않고 있으며 특히 색조 화장품은 거의 사지 않는 것 같다”며 “2년 전에 전 재산을 털어 연 가게지만 조만간 문 닫을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관악구 신림5동 H미용실은 최근 몇 달간 손님이 30% 줄었다. 미용 20년 경력의 김모 원장(40)은 “비싼 파마 대신 1만원대 미만의 커트를 고수하거나 ‘미용 공장’식 미용실을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서 맥줏집을 운영하는 김영미씨(45)는 “부대찌개집을 운영하던 외환위기 때도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호프집은 서민들이 부담 없이 술 한잔 할 수 있는 대표적 업종인데도 손님이 없다. 매출이 절반까지 떨어져 4개월째 임대료를 대출을 받아 내고 있다”고 푸념했다.

김씨는 “주변에는 가게를 내놓았지만 세를 들어오겠다는 사람이 없어 영업도 하지 않으면서 ‘생돈 임대료’를 내는 집도 많다”고 덧붙였다.

이런 불황을 견디다 못한 자영업자들이 창업컨설팅 회사 문을 두드리는 경우도 급증했다.

이경희 창업전략연구소 소장은 “작년 하반기부터 ‘영업 클리닉’ 상담 신청건수가 그전에 비해 10배 이상 급증했다”고 전했다.

한국음식점업중앙회 관계자는 “경기가 나쁜 데다 육류파동까지 겹쳐 최근 2개월 사이 쇠고기나 닭고기, 오리고기를 파는 서울의 1만1400여개 음식점 중 1260여곳이 휴·폐업을 하거나 업종 전환을 했다”고 밝혔다.


조인직기자 cij1999@donga.com

허진석기자 jameshuh@donga.com

김현진기자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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