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李憲宰) 경제부총리가 취임한 뒤 현 정부의 경제정책의 큰 틀이 바뀌는 듯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현 정부가 들어선 뒤 두드러졌던 대기업에 대한 반감과 규제, 상대적으로 분배를 중시하는 듯한 정책에서 벗어나 규제를 풀어 기업의 투자를 부추기는 성장 위주의 정책으로 선회하는 조짐이 뚜렷해지는 조짐이다.
출범 2주일을 앞둔 ‘이헌재 경제팀’의 새로운 정책방향을 ‘키워드’를 중심으로 해서 짚어본다.
▽기업가 정신=이 부총리는 취임 이후 기회 있을 때마다 ‘기업가 정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새로 회사를 만들고 기술 개발과 과감한 투자로 기업을 키우는 ‘창업형 기업가’를 중시한다.
이 부총리는 기업가 정신은 기업 스스로 회복해야 하는 문제지만 정부도 기업가 정신을 북돋우기 위해 할 일이 많다고 믿고 있다.
11일 취임 기자회견에서는 “규제 완화와 세제(稅制) 등 모든 분야에서 기업 활동을 활발하게 할 수 있는 정책과 제도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22일 강신호(姜信浩)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과 만난 자리에서 “창업가형 기업인이 많이 나와야 한다”며 기업의 신규 투자를 지원하겠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청년실업, 가계부채, 신용불량자 등 실타래처럼 엉켜 있는 문제들의 해결책은 결국 왕성한 기업 활동에서 나온다는 이 총리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따라 그동안 대기업의 신규 사업 진출을 출자총액제한 등으로 묶어온 공정거래위원회와 대기업정책을 어떻게 조율해 나갈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LG경제연구원 오문석(吳文碩) 상무는 “외환위기 이후 기업 활동이 위축되고 기업가 정신이 약해진 것이 사실”이라며 “경제성장의 엔진이랄 수 있는 기업의 활동을 지원한다는 이 부총리의 정책 방향은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말했다.
▽성장 동력 회복=이 부총리는 1960, 70년대의 성장을 가능케 했던 경제 체제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정부가 나서서 특정 산업에 자원을 집중하는 정부주도형 경제체제가 지금처럼 다양하고 개방된 경제에서는 효과를 발휘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18일 국회에서 열린 경제분야 대정부 질의에서는 “지금 상태로는 5%의 성장도 어렵다”며 성장 동력 회복에 대한 절박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성장과 개혁 중 하나를 택하라면 성장을 택하겠다”는 이 부총리의 말에서 현 정부의 경제정책의 우선순위가 확실히 성장으로 돌아섰다고 해석하고 있다. 다만 정책의 큰 방향은 옳더라도 시행 과정에서 총선을 앞둔 정치 논리에 휘둘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시장원칙 옹호=이 부총리가 내세우는 또 다른 정책 방향은 ‘간섭하고 규제하는 것은 정부가 아니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는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도와주기만 하면 된다”며 시장원칙을 존중할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계속 논란이 되고 있는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문제에 대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다고 상품의 원가를 공개하면 시장이 기능하지 못한다”고 반대했다. 환율 문제에 대해서도 “외환시장은 원칙적으로 정부가 개입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신치영기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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