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티銀 한미 인수]‘부유층 은행’ 넘어 국내 최강자 야망

  • 입력 2004년 2월 23일 18시 26분


씨티그룹의 한미은행 인수가 공식 발표됐다. 23일 서울 신라호텔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에서 씨티그룹의 아시아태평양 기업투자금융 대표인 스티브 롱(왼쪽에서 두번째)과 한미은행의 하영구 행장이 발표를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 안철민기자
씨티그룹의 한미은행 인수가 공식 발표됐다. 23일 서울 신라호텔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에서 씨티그룹의 아시아태평양 기업투자금융 대표인 스티브 롱(왼쪽에서 두번째)과 한미은행의 하영구 행장이 발표를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 안철민기자
《씨티그룹이 국내 금융회사들을 상대로 ‘전면전’을 선포했다. 당초 씨티그룹은 한미은행을 인수한 뒤 부유층 고객을 상대로 한 프라이빗뱅킹(PB·고액예금자 종합서비스) 부문에 치중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씨티은행은 23일 기업금융과 카드 등 시중은행들의 영업 전반에 뛰어들겠다고 분명히 밝혔다. 씨티그룹이 칼라일펀드에서 한미은행 지분 36.6%를 인수하는 계약은 43.4%의 지분을 공개 매수해 전체 확보 지분이 80%를 넘을 때에만 효력이 있다. 공개매수를 통한 지분 매집에는 최소한 3개월이 걸릴 전망이다.》

▽전방위 시장경쟁 선포=씨티은행은 23일 “한미은행의 지분 80∼100%를 인수한 뒤 별도의 현지법인으로 두겠다”고 밝혔다. 씨티은행 한국지점 등 씨티그룹이 구축해 놓은 영업망은 그대로 두고 한미은행을 자회사로 편입,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한다는 것이다.

씨티그룹 아시아태평양 기업투자금융부문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롱은 “넓은 지점망을 이용한 소비자금융뿐만 아니라 기업금융 카드 등 모든 분야를 균형 있게 발전시킬 것이며 한쪽에 치중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궁극적으로 한국에서 가장 우수한 종합 금융회사를 만드는 것이 씨티그룹의 목표”라고 못 박았다.

금융계에서는 실제로 상당한 시너지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한국에 진출한 씨티그룹 영업망은 씨티은행 한국지점 외에 씨티그룹 글로벌마켓증권, 씨티파이낸셜, 씨티그룹 프라이빗뱅크, 씨티리스 등 업종이 다양하다.

여기에 한미은행은 225개 점포망을 바탕으로 양질의 PB 영업을 하고 있으며 중소기업 대출이나 카드 영업도 영위하고 있다.

씨티그룹은 “다른 프랜차이즈 회사를 만들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밝혀 자산운용사나 카드사를 인수하거나 새로 만들 수 있음을 확인했다.

구본성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부유층을 상대로 한 소매영업을 중심으로 하되 다른 영역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지분 매집 잘 될까=씨티그룹은 한미은행 지분 80% 이상을 꼭 확보하려는 이유에 대해 “한미은행을 씨티그룹에 완전하게 통합시키기 위한 것”이라며 “이미 102개 나라의 은행에 같은 방식으로 진출했다”고 말했다. 씨티그룹 관계자는 “다른 주주의 간섭 없이 그룹의 경영방침을 일관되게 추진하기 위한 그룹의 경영 방침”이라고 밝혔다.

씨티그룹의 지분 매집은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금융계 관계자는 “한미은행 주주의 90%는 외국계 펀드와 기관투자가여서 씨티그룹이 사전에 치밀한 시장조사를 거쳐 인수가격을 정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보증권 성병수 애널리스트도 “한미은행의 자산가치가 주당 8000원 수준인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프리미엄을 준 것”이라고 말했다.

씨티그룹은 “지분 80% 이상 매집을 확신하고 있으나 만일의 경우 (주식 가치를) 다시 재평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신석호기자 kyle@donga.com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

▼인수 협상 뒷얘기

하영구(河永求) 한미은행장과 함께 한미은행 매각 작업을 주도한 박진회(朴進會) 부행장은 “이번 매각과 관련된 사항은 무덤까지 가져가야 한다”며 협상 과정 일체를 비밀에 부쳤다. 씨티은행측과 맺은 ‘비밀 준수협약’ 때문이다.

하지만 본보가 16일자로 ‘한미은행이 씨티은행에 매각될 것’이라고 보도한 뒤 매일같이 이어진 국내 언론 보도를 보고 박 부행장은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밝혔다. 비밀준수협약이 지켜지지 못할 것으로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최종 발표 전까지 스탠더드차터드은행이 막바지 경합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도 흘러 나왔다. 한미은행측이 비밀유지를 위해 역정보를 흘린 것 아니냐는 게 금융계 일각의 분석이다.

금융계에 따르면 씨티은행은 칼라일 지분(36.6%) 인수협상을 먼저 끝낸 뒤 스탠더드차터드은행의 한미은행 지분(9.76%) 인수협상에 나섰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스탠더드차터드은행과의 인수협상은 결렬된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씨티은행은 23일 칼라일 지분의 인수를 공식 발표하고 나머지 지분을 공개매수 형태로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한미은행은 이날 오전 7시30분 이사회를 열고 씨티은행의 공개매수 계약서를 승인했다. 한편 ‘한 식구’가 될 한미은행과 기존 씨티은행 한국지점 직원들은 “합병 이후 인력구조조정이 본격화될 수 있다”며 불안한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한미은행 A 차장은 “앞으로 실적 위주의 조직관리가 한층 더 강화될 것”이라며 “특히 한미은행은 씨티은행보다 연봉이나 평균연령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어 인력구조조정이 앞당겨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씨티은행 관계자도 “발표 직후 인사팀에서 보낸 ‘비자발적인 퇴직이나 퇴출은 없다’는 사내 메일이 오히려 직원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한미은행 노동조합은 “하 행장이 한미은행의 인수합병 사실에 대해 사전에 조합측에 알리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조합이 이번 매각을 찬성한다’고 호도한 것은 노조 와해를 위한 정치적 공작”이라며 “노조는 씨티은행의 인수 결정에 결사반대한다”고 밝혔다.

배극인기자 bae2150@donga.com

김창원기자 changkim@donga.com

▼칼라일펀드 3년 3개월만에 6700억 이익

미국계 사모펀드인 칼라일펀드가 23일 한미은행 지분을 씨티그룹에 매각하면서 6700억원대의 이익을 남기게 됐다.

증권거래소에 따르면 칼라일은 2000년 11월 한미은행 지분 36.55%(약 7423만주)를 4889억원에 사들였다.

그런데 씨티그룹이 이날 칼라일의 한미은행 지분을 소액주주 지분의 공개 매수가격과 같은 주당 1만5500원에 매입하겠다고 발표함에 따라 칼라일이 받게 될 금액은 모두 1조1506억원. 매입 원가를 제외한 차액이 6617억원이므로 칼라일은 한미은행 지분을 매입하고 3년3개월 만에 135%의 수익률을 올린 셈이다. 여기에 한미은행이 올해 주당 150원의 현금 배당을 실시할 예정이어서 칼라일은 배당금 111억원도 추가로 받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칼라일이 한미은행 지분 보유 및 매각을 통해 얻는 이익은 배당금까지 포함할 때 모두 6728억원으로 추정된다.

황재성기자 jsonhng@donga.com

□ 스티브롱 씨티그룹 亞太 CEO

“씨티그룹의 한미은행 인수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역대 최대 규모의 투자입니다. 이번 인수로 한국의 금융 및 기업발전에도 기여하게 될 것입니다.”

씨티그룹 아시아태평양 기업투자금융부문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롱(사진)은 23일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한미은행은 소매금융, 기업금융, 카드, 프라이빗뱅킹(PB) 등 사업영역을 고르게 갖춘 글로벌 은행으로 키워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통합 이후 한미은행 브랜드는 어떻게 되나.

“통합 이후 두 은행의 지위에 대해서는 아직 논의된 바 없다. 전산시스템 통합도 고객의 요구에 맞춰 효율적인 방안으로 추진하되 천천히 진행할 것이다.”

―합병 이후 지점 점포나 인력 구조조정은 어떻게 하나.

“필요한 사업만 골라 인수하는 인수합병과는 달리 이번 인수합병은 한미은행을 통째로 인수하는 것이다. 또 씨티은행은 국내 영업을 계속 강화할 방침이기 때문에 점포 수를 줄이거나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없을 것이다.”

―국내 카드사 또는 은행을 추가로 합병할 계획은….

“씨티은행은 세계 최대의 신용카드 발급회사로 카드사업에 뛰어난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또 매우 중요한 사업부문이기도 하다. 카드사 추가 인수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다른 은행을 추가로 합병할 계획은 없다.”

김창원기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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