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대에 ‘계’ 바람 분다

  • 입력 2004년 2월 24일 16시 10분


회사원 이모씨(34)는 지난달부터 난생 처음으로 한달에 50만원씩 '곗돈'을 붓기 시작했다. "1년이면 목돈을 마련할 수 있다"는 어머니의 권유에 귀가 솔깃한 것. 이씨는 "은행 예금보다 이자가 3~4배 정도 높은 것 같아 시작했다"고 말했다.

40, 50대 주부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져 왔던 '계'를 신종 재테크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20, 30대 직장인들이 늘고 있다.

수익률이 15%를 웃도는데다 이자소득에 대한 세금을 낼 필요가 없어 저금리시대 속 젊은이들의 '목돈마련'의 꿈을 이루는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

5개월째 친척들의 계모임에 참여하고 있다는 회사원 김모씨(27·여)는 "예전에는 계라고 하면 어쩐지 촌스러워서 관심이 없었는데 내년쯤이면 1000만원 정도 곗돈을 탈 수 있을 것 같다"며 "적금 든 기분으로 첫 월급부터 꼬박꼬박 붓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생 강모씨(22·여)는 "과외 아르바이트 비를 저금하려다가 이율이 너무 낮아서 이모랑 함께 계에 참여했다"면서 "친구들하고 장난삼아 여행 계, 음식비 마련 계 등은 예전에도 했었지만 요즘은 아르바이트비 20만~30만원을 곗돈으로 붓는 애들도 꽤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20, 30대의 경우 계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은행보다 이율이 높다"는 말만 믿고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 원금마저 날리는 낭패를 보기도 한다.

경기침체가 지속되면서 계가 깨질 확률도 그만큼 높아졌기 때문. 특히 노련한 4, 50대 주부들과는 달리 계 '초보'인 20, 30대의 경우 높은 이율을 보장한다는 말에 성급하게 계를 선택하거나 높은 수익률을 위해 순번을 늦게 배정받는 경우가 많아 피해를 보기 십상이다.

A여대 4학년 최모씨(24)는 등록금 마련을 위해 지난해 동네 아주머니들과 함께 계를 시작했다가 원금조차 받지 못했다. 계원 중 한 아주머니의 남편 사업이 기우는 바람에 곗돈을 붓지 못해 계가 깨졌던 것.

회사원 이모씨(35)역시 고향 사람들과 함께 참여했던 계가 깨지는 바람에 600만원을 날렸다. 이씨는 "목돈은커녕 아껴 모은 돈만 잃었다"며 "(경찰에) 계주를 고발할 수는 있지만 돈은 되찾기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3개의 계의 계주를 맡고 있는 주부 한모씨(50)는 "요즘은 계주가 곗돈을 가지고 도망치기 때문이 아니라 계원들의 경제 상황이 악화되면서 '피치 못할 사정'으로 계가 깨진다"고 말했다.

한씨는 "젊은 사람들의 경우 당장 돈이 급한 게 아니라 나중에 목돈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곗돈을 늦게 타려다 손해보는 경우가 많다"고 귀띔했다.

LG투자증권 정유진 과장(34)은 이같은 현상에 대해 "은행 이자가 낮기 때문에 20, 30대가 계에 눈을 돌리는 것 같다"며 "재테크 수단으로서의 계는 수익률이 조금 높을지는 모르지만 안정성이 없기 때문에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지원기자 podrag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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