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주주는 지분율 만큼 의결권을 행사한다'는 원칙아래 최 회장을 제외한 오너 일가는 그룹 경영에서 손을 떼고 각 계열사는 전문경영인 중심의 독립적인 이사회에게 맡긴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같은 개혁안은 SK그룹의 내부 경영진들조차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며 내부 논의과정에서 경영진들이 강력히 반대했으나 최 회장은 끝까지 밀어붙였다.
▽SK텔레콤 이사회의 진통과정=SK텔레콤은 최태원 회장과 손길승 회장의 퇴임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24일 열린 이사회에서 사외이사들은 "표문수 사장(최태원 회장의 고종사촌형)은 경영실적도 좋고 그동안 전문경영인으로서 능력을 발휘해왔다"는 이유를 들어 사퇴를 강력히 반대했다. 그러나 25일에는 표 사장이 본인의 뜻대로 깨끗이 물러나 확실한 개혁의지를 시장에 보여야 한다는 동반사퇴론이 확산되고 있다.
한편 손길승 회장이 자신이 물러나는 조건으로 표 사장의 사퇴를 요구했다는 루머가 퍼지고 있다. 손 회장은 옛 SK글로벌과 SK해운 사태가 터졌을 때 SK텔레콤의 지원을 요청했으나 표 사장이 중립을 택했다는 이유다.
한 사외이사는 "손 회장측이 표 사장의 동반사퇴를 요구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최 회장도 표 사장을 100% 신임했다면 사의표명을 말렸을 것"이라고 말해 양쪽에서 사퇴압력이 있었음을 시사했다.
▽최태원 회장의 정면돌파 의지=SK그룹의 위기는 옛 SK글로벌 분식회계 사태와 SK㈜의 2대주주로 떠오른 소버린자산운용의 지배구조개선 압박, 재벌시스템 개혁을 요구하는 사회분위기 등이 맞물려 증폭됐다. 특히 최 회장이 비상장계열사인 SK C&C 44% 지분만으로 59개 계열사를 지배할 정도의 취약한 지배구조는 소버린 공격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게다가 손길승 회장의 대선자금 제공과 SK해운 자금유용 등으로 SK그룹의 신뢰도는 바닥에 떨어진 상태. 최 회장은 이번 기회에 SK그룹이 일신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그룹이 외부의 힘에 의해 해체될지도 모른다는 절박한 위기의식을 느껴 초강수를 둔 것.
업계에서는 최회장이 립서비스 수준을 넘어선 강력한 개혁안을 내놓고 이를 실천하는 모습을 외부에 보여주지 못한다면 설령 이번 주총에서 승리하더라도 계속해서 외국인 투자가의 압력에 시달릴 것으로 예상해왔다.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재벌은 해체=SK그룹 고위관계자는 "최 회장은 이제 백의종군(白衣從軍)하는 자세로 SK㈜의 대주주와 대표이사로서 경영능력을 인정받는다는 생각"이라며 "계열사 지배도 직접 통제가 아닌 주주로서 간접 통제하는 형식으로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최 회장은 그룹의 지주회사인 SK㈜만을 지배하고 나머지 SK계열사는 독립적인 이사회 중심으로 이끌어간다는 것. SK㈜는 대주주 자격으로 계열사의 경영실적에 따라 이사회를 구성하고 평가하는 것이지 과거처럼 그룹 회장이 계열사의 주요 의사결정에 일일이 관여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다. 이는 사실상 전통적 의미의 재벌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것.
SK그룹은 앞으로 복잡한 순환출자 관계는 유지하지만 브랜드와 문화만을 공유하고 계열사는 각개약진 형태로 나가게 된다. 과거처럼 주력계열사의 도움을 받는 것은 어렵고 독자생존 하지 못하면 어쩔 수 없이 도태되는 구조다.
김두영기자 nirvana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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