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계열사 이사회중심 독립경영 체제로”

  • 입력 2004년 2월 25일 18시 27분


SK그룹의 오너 일가와 핵심경영진이 SK텔레콤의 이사직 동반 퇴진 의사를 밝힌 것은 그룹 오너인 최태원 회장의 지배구조 개혁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대주주는 지분만큼 의결권을 행사한다’는 원칙 아래 최 회장을 제외한 오너 일가는 그룹 경영에서 손을 떼고 각 계열사는 전문경영인 중심의 독립적인 이사회에 맡긴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분석이다.

이 같은 개혁안은 SK그룹의 내부 경영진조차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으로 내부 논의과정에서 경영진이 반대했지만 최 회장이 끝까지 물러서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SK텔레콤 이사회의 진통=SK텔레콤은 최 회장과 손길승 회장의 퇴임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사외이사들은 24일 열린 이사회에서 “표문수 사장(최 회장의 고종사촌형)은 경영실적도 좋고 그동안 전문경영인으로서 능력을 발휘해왔다”는 이유를 들어 사퇴를 강력히 반대했다.

그러나 25일에는 표 사장이 본인의 뜻대로 깨끗이 물러나 확실한 개혁의지를 시장에 보여주어야 한다는 동반사퇴론이 확산되고 있다. 한편 손 회장은 옛 SK글로벌과 SK해운 사태가 터졌을 때 SK텔레콤에 지원을 요청했지만 표 사장이 중립을 택했다는 점을 들어 자신이 물러나는 조건으로 표 사장의 동반 사퇴를 요구했다는 후문도 흘러나오고 있다. 한 사외이사는 “손 회장측이 표 사장의 동반사퇴를 요구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최 회장도 표 사장을 100% 신임했다면 사의표명을 말렸을 것”이라고 말해 양쪽에서 사퇴압력이 있었음을 시사했다.

▽최태원 회장의 정면돌파 의지=SK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시도는 옛 SK글로벌 분식회계 사태와 SK㈜의 2대주주로 떠오른 소버린자산운용의 지배구조개선 압박, 재벌시스템 개혁을 요구하는 사회분위기 등과 맞물려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특히 최 회장이 비상장계열사인 SKC&C 지분 44%만으로 59개 계열사를 지배할 정도의 취약한 지배구조는 소버린 공격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게다가 손 회장의 대선자금 제공과 SK해운 자금유용 등으로 SK그룹의 신뢰도는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다.

최 회장은 이번 기회에 SK그룹이 일신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그룹이 외부의 힘에 의해 재편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느껴 이 같은 방안을 추진했다고 측근들은 전한다. 업계에서는 최 회장이 강력한 개혁안을 내놓고 이를 실천하는 모습을 외부에 보여주지 못한다면 설령 이번 주총에서 승리하더라도 계속해서 외국인 투자자의 압력에 시달릴 것으로 예상해왔다.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재벌은 해체=SK그룹 고위관계자는 “최 회장은 이제 백의종군(白衣從軍)하는 자세로 SK㈜의 대주주와 대표이사로서 경영능력을 인정받는다는 생각”이라며 “계열사 지배도 직접 통제가 아닌 주주로서 간접 통제하는 형식으로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최 회장은 그룹의 지주회사인 SK㈜만을 지배하고 나머지 SK계열사는 독립적인 이사회 중심으로 이끌어간다는 것.

SK㈜는 대주주 자격으로 계열사의 경영실적에 따라 이사회를 구성하고 평가할 뿐이며 과거처럼 그룹 회장이 계열사의 주요 의사결정에 일일이 관여하지는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는 사실상 전통적 의미의 재벌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것.

SK그룹은 앞으로 복잡한 순환출자 관계는 유지하지만 브랜드와 문화만을 공유하고 계열사는 독자 운영하는 형태로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병기기자 eye@donga.com

김태한기자 freewill@donga.com

김두영기자 nirvana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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