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제’후 접대비 10% 줄었다…회피수단 ‘영수증 쪼개기’

  • 입력 2004년 2월 26일 18시 18분


건당 50만원 이상 접대할 때 상대방의 인적사항을 의무적으로 기재토록 하는 접대비 실명제가 올해 1월 도입된 이후 대기업의 접대비 지출액이 평균 9.8%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26일 매출액 상위 600대 기업 중 300개사를 골라 접대비 실명제 실태를 조사한 결과 ‘접대비 지출액이 10% 이하 감소했다’고 응답한 기업이 72.1%, ‘11∼20% 감소’가 15.4%, ‘21∼30% 감소’가 6.5%로 평균 9.8%의 감소율을 보였다.

응답 업체의 44.9%는 유흥주점에서의 접대비를 가장 많이 줄였다고 답했고 다음은 고급음식점(19.4%), 골프장(16.5%), 상품권 구매(16.2%) 등의 순이었다.

접대비 실명제 회피 방법으로는 시차를 두고 결제하는 ‘영수증 쪼개기’(83.2%)가 가장 많았고 통신카드 상품권 등 ‘대체 지불수단 사용’(9.7%), ‘관계회사 카드 공유’(5.1%) 등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경련 관계자는 “통신카드의 경우 100만원짜리 고액 전화카드도 있어 업체들이 결제수단으로 제시하면 업소에서 이를 받아 할인받는다”고 말했다.

관계회사 카드 공유는 기업이 계열사나 거래업체 등 다른 법인의 카드를 사용함으로써 실명제를 피해 가는 방법이다.

기업의 접대비 지출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접대비 실명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12.6%)보다 “입증대상 금액을 올려야 한다”는 의견(87.4%)이 많았다.

입증대상 기준금액(현행 50만원) 조정과 관련해 응답 업체의 66.5%가 100만원 이상으로 올려야 한다고 밝혔고 200만원 이상으로 인상해야 한다는 의견도 27.5%였다.

응답 업체의 57.7%는 접대비 실명제로 기업의 영업활동이 위축될 것으로, 73.4%는 내수경기 회복에 나쁜 영향을 줄 것이라고 예상했다.

전경련 김용옥 경제조사실 차장은 “접대를 상대적으로 많이 해야 하는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하면 이보다 더 부정적인 결과가 나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사에 응한 업체 관계자들은 “기업이 접대를 하면서 상대방의 신분이나 접대 내용을 어떻게 노출시킬 수 있겠느냐”며 “제도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 한 접대비 지출을 변칙 처리하는 관행이 생겨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원재기자 w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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