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요! 외국인 CEO”…대통령-정치권 잇단 러브콜

  • 입력 2004년 2월 26일 18시 19분


한국에서 외국인 최고경영자(CEO)의 주가가 치솟고 있다. 최근 들어 정부 고위당국자는 물론 정치인들까지 외국인 CEO들과 잇단 면담을 갖는 등 ‘러브 콜’을 보내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열기 위해 외국인 투자 유치가 핵심 과제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지난해 9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투자유치를 위해 다국적기업의 CEO들을 대통령 명의로 한국으로 초청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다국적기업의 CEO를 면담하고 북핵 문제와 노사 문제 등 투자 우려 요인을 해소하겠다는 뜻.

실제로 노 대통령은 지난해 주한 외국인 CEO들을 초청해 간담회를 열기도 했다. 이를 두고 외국기업 관계자들은 외국인 CEO의 위상이 크게 높아진 것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전성철 세계경영연구원 이사장은 “과거에는 외국 기업이 한국 경제를 ‘수탈’한다는 인식이 많았지만 요즘은 외국인 투자가 늘어야 고용도 늘고 경제가 살아난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외국인 CEO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세계경영연구원은 지난해 주한 외국인 CEO 20명으로 구성된 세계경영연구원 외국인 CEO포럼을 발족해 매달 1번씩 정부 당국자와 정기적인 만남을 진행하고 있다.

정치권도 외국인 CEO에게 ‘러브 콜’을 보내고 있다. 조순형(趙舜衡) 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는 26일 제프리 존슨 암참 명예회장, 웨인 첨리 다임러크라이슬러코리아 사장, 앤드루 세지윅 애플컴퓨터코리아 대표 등을 초대해 정책 간담회를 열었다.

정부 고위 당국자와 정치권이 외국인 CEO를 보는 시각이 달라지면서 이들의 발언권과 영향력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7월 주한(駐韓) 일본 경영인 모임인 서울저팬클럽(SJC) 이사장인 다카스기 노부야(高杉暢也) 한국후지제록스 회장은 노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 “한국이 동북아시아의 중심이 되기 위해서는 ‘국가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충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외국인 CEO 전성시대’의 이면에는 국내 기업인의 역(逆)차별이 존재한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글로벌 시대에 해외 투자도 중요하지만 국민 경제 기여도나 기업 규모 면에서 외국인 CEO보다 비중이 큰 국내 기업인들이 상대적으로 홀대를 받고 있다는 것.

재계의 한 관계자는 “정치권이나 정부 고위당국자가 외국인 CEO의 의견을 듣고 외국인 투자 유치에 나서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일방적인 의견 수용은 국내 기업에 대한 역차별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 용기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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