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만 하더라도 비슷한 모습이었던 그룹들의 지배구조가 각기 다른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특히 삼성 LG SK 현대기아자동차 등 국내 4대 그룹은 ‘재벌’이라는 하나의 단어로는 설명이 불가능할 정도로 다른 지배구조로 변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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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와 SK는 전통적인 의미의 재벌이라고 부를 수 없다고 전문가들이 평가할 정도.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의 황인학 박사는 이런 흐름에 대해 “재벌들이 ‘주주자본주의의 대두’라는 외부의 환경 변화에 대해 대주주 및 계열사간의 지분구조, 업종의 특성, 오너의 경영철학 등 각 그룹의 특성을 감안하면서 적응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기업지배구조개선지원센터 정광선 원장은 “포스코 KT KT&G 등 소유와 경영이 완전히 분리된 기업과 제각기 다른 지배구조를 갖는 재벌 등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가 다양해지고 있다”며 “각기 처한 상황에 따라 계속해서 진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너와 전문경영의 조화, 삼성=삼성은 다른 그룹과는 다르게 구조조정본부의 기능이 강화되고 있다. 창업 이래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는 데 ‘관제탑’ 기능을 해온 구조본의 역할이 컸다는 판단 때문이다.
인사 재무 홍보 기획 경영진단 의전 등 7개 팀에 100명으로 구성된 구조본은 64개 계열사 실적 및 전문경영인에 대한 평가, 대형 투자와 관련 계열사와의 사전 협의, 계열사간의 시너지 창출 전략 등 오너의 경영판단을 보좌하고 있다.
‘오너와 전문경영인간 견제와 조화’라는 삼성 특유의 문화는 계속 유지하겠다는 것이 삼성의 방침이다.
황 박사는 “재벌의 순기능은 이미 끝났다는 일부 전문가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삼성의 놀라운 발전은 지배구조의 정답은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지주회사 모델, LG=LG는 외환위기 이후 지배구조가 가장 혁명적으로 변한 그룹. 46개 계열사 중 금융 계열사를 제외한 37개 계열사가 지주회사인 ㈜LG의 자회사 및 손자회사로 통합됐다. 계열사간 복잡한 상호출자가 해소돼 가장 투명한 지배구조를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구본무 회장은 지주회사인 ㈜LG의 회장으로서 각 계열사의 경영에는 간여하지 않는다. 옛 구조조정본부 조직은 50여명으로 축소돼 지주회사로 옮겼으며 경영관리, 인사, 재경, 사업개발, 법무기능만 남아 있다.
㈜LG는 현금 수입이 계열사의 브랜드 로열티와 배당이 전부인 순수 지주회사로 운영된다.
▽브랜드만 공유한 느슨한 기업집단 SK=SK는 SK㈜와 SK텔레콤의 잇단 이사회 혁명으로 59개 계열사를 거느린, 브랜드만 함께 쓰는 기업집단으로 변화하고 있다.
SK는 최태원 회장이 SK㈜의 대표이사로서만 경영을 책임지고 나머지 58개 계열사는 이사회를 중심으로 독립 경영한다. 각 계열사는 회사의 이익이 될 때만 다른 계열사와 거래를 하거나 협력하게 된다.
구조조정본부는 대폭 축소돼 SK㈜ 이사회 산하 조직으로 투자회사 관리실로 옮겨갔다.
▽업종 전문화 그룹, 현대기아차=2000년 4월 현대그룹에서 분가하면서 현대기아차그룹은 자연스럽게 자동차 전문그룹으로 정리됐다. 재벌체제의 상징인 구조조정본부와 사장단 회의도 존재하지 않는다.
“계열사 수가 25개지만 현대 및 기아차가 그룹 전체 매출(59조원)의 70%를 차지하기 때문에 계열사를 총괄하는 구조조정본부가 필요없다”는 것이 현대차측의 설명이다. 현대기아차그룹의 관심도 신규 사업보다는 현대기아차의 글로벌화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현대기아차그룹은 계속해서 자동차 전문그룹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이병기기자 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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