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구조 정답없다” 그룹들 제각각 진화

  • 입력 2004년 2월 26일 18시 36분


황제 같은 오너, 가신(家臣)회의라 불리던 사장단 회의, 오너의 뜻을 받들어 전체 계열사를 관장하던 비서실….

수년 전만 하더라도 비슷한 모습이었던 그룹들의 지배구조가 각기 다른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특히 삼성 LG SK 현대기아자동차 등 국내 4대 그룹은 ‘재벌’이라는 하나의 단어로는 설명이 불가능할 정도로 다른 지배구조로 변화하고 있다.


LG와 SK는 전통적인 의미의 재벌이라고 부를 수 없다고 전문가들이 평가할 정도.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의 황인학 박사는 이런 흐름에 대해 “재벌들이 ‘주주자본주의의 대두’라는 외부의 환경 변화에 대해 대주주 및 계열사간의 지분구조, 업종의 특성, 오너의 경영철학 등 각 그룹의 특성을 감안하면서 적응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기업지배구조개선지원센터 정광선 원장은 “포스코 KT KT&G 등 소유와 경영이 완전히 분리된 기업과 제각기 다른 지배구조를 갖는 재벌 등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가 다양해지고 있다”며 “각기 처한 상황에 따라 계속해서 진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너와 전문경영의 조화, 삼성=삼성은 다른 그룹과는 다르게 구조조정본부의 기능이 강화되고 있다. 창업 이래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는 데 ‘관제탑’ 기능을 해온 구조본의 역할이 컸다는 판단 때문이다.

인사 재무 홍보 기획 경영진단 의전 등 7개 팀에 100명으로 구성된 구조본은 64개 계열사 실적 및 전문경영인에 대한 평가, 대형 투자와 관련 계열사와의 사전 협의, 계열사간의 시너지 창출 전략 등 오너의 경영판단을 보좌하고 있다.

‘오너와 전문경영인간 견제와 조화’라는 삼성 특유의 문화는 계속 유지하겠다는 것이 삼성의 방침이다.

황 박사는 “재벌의 순기능은 이미 끝났다는 일부 전문가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삼성의 놀라운 발전은 지배구조의 정답은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지주회사 모델, LG=LG는 외환위기 이후 지배구조가 가장 혁명적으로 변한 그룹. 46개 계열사 중 금융 계열사를 제외한 37개 계열사가 지주회사인 ㈜LG의 자회사 및 손자회사로 통합됐다. 계열사간 복잡한 상호출자가 해소돼 가장 투명한 지배구조를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구본무 회장은 지주회사인 ㈜LG의 회장으로서 각 계열사의 경영에는 간여하지 않는다. 옛 구조조정본부 조직은 50여명으로 축소돼 지주회사로 옮겼으며 경영관리, 인사, 재경, 사업개발, 법무기능만 남아 있다.

㈜LG는 현금 수입이 계열사의 브랜드 로열티와 배당이 전부인 순수 지주회사로 운영된다.

▽브랜드만 공유한 느슨한 기업집단 SK=SK는 SK㈜와 SK텔레콤의 잇단 이사회 혁명으로 59개 계열사를 거느린, 브랜드만 함께 쓰는 기업집단으로 변화하고 있다.

SK는 최태원 회장이 SK㈜의 대표이사로서만 경영을 책임지고 나머지 58개 계열사는 이사회를 중심으로 독립 경영한다. 각 계열사는 회사의 이익이 될 때만 다른 계열사와 거래를 하거나 협력하게 된다.

구조조정본부는 대폭 축소돼 SK㈜ 이사회 산하 조직으로 투자회사 관리실로 옮겨갔다.

▽업종 전문화 그룹, 현대기아차=2000년 4월 현대그룹에서 분가하면서 현대기아차그룹은 자연스럽게 자동차 전문그룹으로 정리됐다. 재벌체제의 상징인 구조조정본부와 사장단 회의도 존재하지 않는다.

“계열사 수가 25개지만 현대 및 기아차가 그룹 전체 매출(59조원)의 70%를 차지하기 때문에 계열사를 총괄하는 구조조정본부가 필요없다”는 것이 현대차측의 설명이다. 현대기아차그룹의 관심도 신규 사업보다는 현대기아차의 글로벌화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현대기아차그룹은 계속해서 자동차 전문그룹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이병기기자 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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