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 경제부는 노무현(盧武鉉) 정부 출범 1주년 국제세미나 참석차 최근 방한한 밥 호크 전 호주 총리와 마이클 바티키오티스 ‘파이스턴이코노믹리뷰’ 편집국장을 초청해 △FTA △노사관계 △중국경제 △아시아지역 경제협력에 관한 의견을 들어보았다. 호크 전 총리는 노동운동가 출신으로 ‘조정의 달인(達人)’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바티키오티스 편집국장은 아시아지역 경제 전문가로 꼽힌다. 지난달 27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이번 좌담회에는 고려대 경제학과 박영철(朴英哲) 교수가 사회 겸 토론자로 함께 참석했다.》
▼참석자 프로필
밥 호크 전 호주 총리
△서(西) 호주대(경제학)
△영국 옥스퍼드대
△호주 노총 연구원 및 변호사
△호주 노총 위원장
△하원의원
△호주 노동당 총재
△호주 총리
바티키오티스 편집국장
△미국 출생
△영국 런던대
△영국 옥스퍼드대
△파이스턴이코노믹리뷰
자카르타 지국장
△파이스턴이코노믹리뷰
방콕 지국장
△파이스턴이코노믹리뷰 편집국장
박영철 고려대 교수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미네소타주립대 경제학 박사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
△한국금융연구원장
△대외경제통상 대사
▽박영철 교수=한국은 칠레와의 FTA 국회 비준과정에서 농민들과 농촌 출신 국회의원들의 반대로 진통을 겪었다. 호주도 현재 미국과의 FTA 체결을 추진 중인데, 이해관계자들의 반대는 어떻게 조정하나.
▽호크 전 총리=양자간 협상은 다자간 협상보다 더욱 어렵다. 협상 과정에서 하나를 받으면 하나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호주-미국간 FTA도 때 아닌 ‘설탕’ 문제 때문에 난항을 겪고 있다. 미국 플로리다 설탕 생산업체들이 값싼 호주 설탕 수입이 급증한다며 반대하자, 미국 정부가 주춤하고 있다. 호주도 마찬가지다. FTA가 마무리돼 관세를 낮추게 되면 수입품 가격이 낮아져 대다수 소비자들은 보다 싼 가격에 물건을 살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손해를 보는 일부 계층이 목소리를 높이면서 정치권이 부담을 느끼고 있다.
▽박 교수=‘조직화된 소수’가 ‘조용한 다수’보다 훨씬 강력하다는 말이 있다. 특히 정치권은 이해당사자들의 압력에 약하다. 최근 미국에서도 기업들의 아웃소싱 업무가 인도로 이전되는 추세와 관련해 “외국이 일자리를 빼앗아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일자리 보호주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대선후보들마저 여기에 동조하고 있다. 사실 경제학 원론만 읽어봐도 아웃소싱 해외이전이 미국 전체 국민들의 후생을 증가시킨다는 사실이 분명한데도 그렇다.
▽호크 전 총리=내가 정치인 출신이어서 잘 알지만, 정치권은 원래 그렇다(일동 웃음). 나는 이를 ‘데시벨(소리세기 단위)의 역설’이라고 부른다. 즉 침묵을 지키는 다수와 목소리를 높이는 소수가 있으면 항상 ‘소수’ 목소리만 들린다는 점이다. 그러면 정치인들은 ‘소수’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인다. 이들은 조용한 다수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점에서 ‘귀머거리’인 셈이다. 그러나 정치인은 항상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있다. 93년 총리로 취임했을 때 호주는 물가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래서 신발과 의류에 대한 관세를 낮추려고 했더니, 전체 국민의 ‘1%’도 안 되는 신발과 의류 제조업체들이 격렬하게 반대했다. 정치인은 다수의 이익을 위해 때로는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한다. 이것이 정치적인 리더십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박 교수=외국에서는 한국의 노조에 대해 ‘강성노조’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도 노사분규 발생건수가 전년도에 비해 줄었을지 모르지만 그 강도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외국에서는 대체로 어떻게 보나.
▽바티키오티스 편집국장=외국에서도 한국의 전투적인 노조는 유명하다. TV를 통해 마스크를 쓴 채 쇠파이프를 들고 전투적으로 파업이나 농성을 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이 같은 장면들은 어찌됐건 외국인 투자자들에게는 매우 ‘인상적인’ 모습으로 각인(刻印)되고 있다. 물론 중국 등 다른 나라들도 강성 노조 문제를 갖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개방이 덜 돼 이런 문제가 잘 알려지지 않고 있는 반면 한국은 이 같은 모습이 외부에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
▽박 교수=호크 전 총리는 노동당을 이끌어오면서 노동자 권익을 증진시키는 한편 사회적인 합의를 도출하는 데에도 성공했다. 노사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에 충고를 하나 해 달라.
▽호크 전 총리=먼저 경제성장에 따른 과실의 일정 부분을 근로자들에게 나눠줘 근로자들의 정당한 욕구를 충족시켜줘야 한다. 물론 노조의 요구가 정당한 수준이어야 한다. 또 교육 및 보건 분야에 대한 공공지출을 늘려 ‘사회적인 임금’을 높여 나가는 게 효과적이다. 93년 총리 취임 당시 호주는 심각한 노사분규를 겪었다. 이는 경제성장과 외국인 투자유치에 걸림돌로 작용했다. 그래서 저소득층 자녀에 대한 교육과 서민층을 위한 보건 분야에 공공지출을 확대했다. 이처럼 ‘사회적인 임금’을 높이는 정책을 폈는데 그게 효과를 거뒀다. 다음으로 정부와 사용자는 모든 정보를 근로자들과 공유해야 한다. 기업과 근로자들이 처한 현실이 무엇인지, 어떤 문제가 있는지 등에 대한 정보를 정확하게 노조 또는 근로자들에게 제공하고 협의를 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생산성도 올라간다.
▽박 교수=중국문제로 화제를 돌려보자. 중국이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중국이 연평균 8∼10%의 고성장을 장기간 지속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나 이는 잘못된 예측인 것 같다. 또 다른 국가들이 경험했듯이 경제발전으로 소득이 높아지면 정치적인 참여와 자유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진다. 아울러 고속 성장의 그늘에는 지역간 계층간의 소득격차 문제가 있다. 중국이 공산주의의 경직화된 정치체제를 고수하는 한 심각한 사회적 정치적 불안을 겪게 될 것이다.
▽바티키오티스 국장=지난해 한국의 대(對) 중국 수출은 357억달러에 달할 정도로 중국비중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는 일본도 마찬가지다. 한국 기업의 중국 진출이 확대되면서 한국 내에서는 산업 공동화(空洞化)를 가속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특히 동아시아 경제에서는 이미 강력한 성장엔진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전통적으로 아시아 지역 제조업이 성장하는데 큰 역할을 했던 미국과 유럽시장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한편 중국이 안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정치적인 문제이다. 물론 당장 공산당이 붕괴되거나 근본적인 개혁이 일어날 가능성은 적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일어나면 중국은 큰 혼란을 겪게 될 것이다.
▽호크 전 총리=개인적으로 중국을 자주 방문했다. 중국은 싸고 숙련된 노동력과 함께 거대한 내수시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외국자본의 중국유입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중국은 앞으로 몇 년 동안 7% 정도의 성장을 하다가 그 이후에는 5∼6% 정도의 안정적인 성장세를 유지할 것으로 본다. 그러나 앞으로 10%가 넘는 고성장은 어려울 것으로 본다.
▽박 교수=바티키오티스 국장은 오랫동안 이 문제를 취재해왔을 텐데, 아시아 지역에서 무역협의체 전망은 어떻게 보고 있나. 중국 일본 한국 모두가 ASEAN과 FTA 협상을 시작하였거나 추진할 계획을 갖고 있다. 아울러 한일 FTA 협상은 이미 시작됐다. 이러한 양자간 FTA의 난립이 오히려 동아시아의 무역 질서를 혼란에 빠지게 하지 않겠는가? 한 중 일 3국간의 FTA는 가능하다고 보는가.
▽바티키오티스 국장=사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는 가장 큰 다자간 무역협의체였다. 미국에서부터 아시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지역을 포괄하고 있다. 미국은 다자간 협상에 매우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2001년 9·11테러가 발생한 뒤에 무역 문제에 안보 문제가 개입되기 시작했다. 미국은 양자간 협상에 주력하면서 테러와의 전쟁에 협조하는 국가에는 우호적인 반면 그렇지 않은 국가와는 상대도 하지 않으려고 했다. 반면 다자간 협상에 소극적이었던 중국은 ‘ASEAN+3(한 중 일)’ 형태로 매우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포인트다. 결국 미국도 다자간협의체에 적극적으로 돌아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 동북아 지역에서 무역이 급신장하면서 10년 전까지만 해도 회의적이라고 여겨졌던 동아시아 지역 통합에 대한 비전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무역 및 경제성장에 있어 중국 일본 한국의 상호의존성은 점차 증대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한 중 일의 경제통합은 장기적으로 각국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작용할 것이다. 실제로 이미 한 중 일 3국은 지난해 10월 장기적으로는 유럽연합(EU) 및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대응하는 자유무역지대를 창출하기 위해 동북아 지역의 경제협력을 증진시킨다는 점에 합의한 바 있다.
정리=공종식기자 kong@donga.com
신치영기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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