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9 부동산대책’ 직전 경기 성남시 분당 신도시에서도 노른자위로 꼽히던 정자동에서 대형 건설회사인 P사가 분양한 주상복합 아파트의 ‘고무줄’ 분양가다. 같은 장소, 같은 아파트가 불과 석달 사이에 분양가가 40%가량 껑충 뛴 것.
대표적인 건설회사 가운데 하나인 L건설은 지난해 5월 경기 양주에서 1차분 2864가구를 평당 410만원에 분양했다. 10월 2차분 분양에서는 440만원으로 7% 올렸다. 소비자들은 32평형 같은 아파트를 5개월 늦게 분양받은 이유만으로 960만원이나 더 비싼 값을 치러야 했다.
이 과정에서 차곡차곡 돈을 모아 내 집을 마련해보겠다던 실수요자들의 꿈은 깨져나갔다.
최근 분양원가 공개 논란은 서울시가 상암지구 도시개발공사의 분양 수익률이 40%에 이른다고 발표한 이후 더욱 가열되는 형국이다.
현재 분양가에서 빼낼 수 있는 ‘거품’은 없는지, 이를 위한 제도적 대안은 무엇인지 알아본다.
▽‘로또’식 공공택지 분양, 원가 상승의 원인=2001년 11월 분양이 끝난 파주시 교하 공동주택필지는 지난해 말까지 2년 동안 전체 62만평 가운데 40% 정도의 명의가 변경됐다. 이 가운데 30% 정도는 제3자에게 다시 팔렸다. 공공택지 7만여평이 주인이 두 번 이상 바뀌면서 그 사이 택지비도 2∼4배로 뛰었다는 게 건설교통부의 설명이다.
이처럼 공공택지 분양 당첨을 노리는 영세 시행사들이 전국에 수천개가 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건교부는 투기형 시행자들이 공공택지를 사놓기만 하고 일정 기간 안에 집을 짓지 않으면 땅을 강제로 되살 수 있는 규정을 새로 만드는 등 규제에 나섰다. 하지만 이미 손바꿈 과정에서 부풀려진 택지비 거품은 분양가에 고스란히 전가된 뒤다.
▽민간 건설회사들 폭리 취하나=시민단체들은 아파트 분양가에 30%이상 거품이 끼어 있다고 주장한다. 경제정의실천연합은 최근 경기 용인 동백지구에서 아파트를 분양한 13개 업체의 분양 원가를 조사한 결과 공기업은 32%(평당 210만원), 민간기업은 34%(246만원)의 분양 수익률을 남겼다고 주장했다.
반면 주택협회는 최근 서울지역에서 분양된 35평형 아파트의 분양 수익률이 2%밖에 안된다는 자료를 내놓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양측의 주장이 모두 극단적인 사례라고 지적한다.
대우증권 부동산금융팀의 정정욱 과장은 “시민단체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매번 그 정도 수익을 남긴다면 주택전문 건설회사들은 초우량 기업군(群)에 속할 것”이라며 “실제 주택건설업은 리스크가 워낙 크기 때문에 투자적격 등급인 건설회사는 손에 꼽을 정도”라고 말했다.
비교적 우량 건설회사는 단일 분양사업에서 30% 정도 수익률을 남기는 게 사실이지만 외환위기 직후처럼 분양이 안 될 때도 있고, 지역에 따라 손해 보는 경우도 있어 이를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는 설명이다.
▽후진적 시스템 고치면 ‘거품’ 일부 빠질 수도=정부는 분양가 규제에서 오는 여러 가지 폐해를 고려해 분양가를 자율화했다. 이에 따라 아파트 가격은 기본적으로 시장의 수요 공급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원칙이다.
전문가들은 이 원칙을 지키면서도 불합리한 제도들을 손질하면 거품을 뺄 여지가 얼마든지 있다고 지적한다.
현재는 택지개발자, 시행자, 설계자, 시공자가 다 따로 있어 단계가 넘어갈 때마다 원가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다단계 시스템. 만일 대형 건설회사가 공공택지를 사들이면 부채비율이 급격히 올라가고 은행 금리가 2배 가까이 높아진다. 일괄 시스템이 도입되기 어려운 구조다.
미국 일본의 경우 대형 건설회사들이 개발에서 시행까지 맡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일본의 대표적인 건설회사인 시미즈건설은 기술개발과 시공을 맡고 자회사인 시미즈부동산이 시행에 나서고 있다.
후(後)분양제 정착도 소모적인 분양원가 논쟁을 상당히 줄일 전망이다. 변수가 많은 시공과정 중에 비용이 얼마나 더 들어갈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건설회사들이 분양가를 우선 높게 책정해둘 수밖에 없다는 것.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장은 “대형 건설회사의 자회사와 은행들이 컨소시엄 형태로 별도 회사를 만들어 시행을 맡기는 방안도 대안이 될 수 있다”며 “이를 위해 정부가 관련 제도들을 손질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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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현기자 kkh@donga.com
이은우기자 lib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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