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에어컨 설치하지 않은 것은 현장에서 비지땀을 흘리며 고생하는 직원들에게 미안해서다. 반면 직원 사무실에는 10여 년 전 에어컨을 설치해 줬다.
“외국에서 온 바이어 등 손님이 연신 땀을 훔치는 모습이 미안해 어쩔 수 없이 에어컨을 설치했어요.”
김 사장은 남동공단 3600여개 업체 가운데 직원에 대한 배려가 남다르기로 소문나 있다.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 가을, 직원들은 사장 면담을 요청했다.
직원들은 회사 인근에 있는 다른 업체가 줄줄이 도산하면서 퇴직금 한 푼 받지 못한 채 실업자 신세가 되는 모습을 보자 걱정스런 마음에 김 사장에게 퇴직금 정산을 요구한 것.
“처음에는 좀 섭섭했어요. 그런데 회사가 이 정도로 성장한 것 모두 직원들 덕분이라고 생각하니 달라지더군요.”
당시 회사 사정이 좋지 않았지만 적립해 놓은 퇴직금에다 개인 돈을 더해 원하는 직원들에게 퇴직금을 중간 정산해 줬다.
그는 1984년에는 생사고락을 같이해 온 부사장 등 일부 직원을 내보낼 수 없어 자리를 만들기 위해 ㈜만승전기란 자회사를 세우기도 했다. 이 회사는 10년간 적자를 내오다 흑자로 돌아섰다.
그가 직원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열악한 현장에서 직원과 함께 고생한 기억이 아직 생생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는 1958년 고향인 충북 단양에서 무일푼으로 서울로 올라와 독학으로 한양대 공대를 졸업했다. 68년 성수동의 10평 남짓한 공장에서 직원들과 밤을 세워가며 소형모터를 국산화하려고 노력했다. 당시 소형모터는 모두 미제(美製)였다.
“직원들과 끼니도 거르면서 고생하다보니 애틋한 정이 생기더군요. 사실 제조업은 직원이 전부죠.”
소형 모터의 국산화에 성공한 그는 모터를 응용해 공업용 선풍기, 환풍기, 송풍기 등을 생산했다.
이 회사는 87년 우루과이라운드에 대비해 국립농자재검사소가 요구한 농업용 환풍기를 규격화했다. 97년에는 기술개발을 통해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전량 수입하던 레인지 후드와 냉동 창고에 사용하는 모터를 국산화하는데 성공했다.
현재 이 회사는 사우디아라비아 일본 등에 연간 300여만달러 어치의 송풍기와 공업용 선풍기 등을 수출하고 있다.
남동공단 경영자협의회장을 2000년부터 맡아오다 최근 자리를 내 준 그는 청각장애인과 소년소녀가장을 돕는데도 앞장서고 있다.
그는 “기업을 처음 할 때보다 직원들에게 잘해 주지 못하는 것 같아 항상 미안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차준호기자 run-ju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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