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에 油價까지” 산업계 초비상… 경기 악영향 현실로

  • 입력 2004년 3월 3일 19시 01분


효성은 지난달 말 거래하는 직물업체들에 판매가격 인상안을 통보했다. 나일론과 폴리에스테르 원사(原絲) 공급가격을 파운드당 0.03달러씩 인상키로 한 것이다. 효성은 다음 달 말까지 추가로 0.1달러씩 더 올릴 방침이다.

직물 업체들의 즉각적인 반발이 시작됐다. 그렇지 않아도 섬유업계가 고사(枯死) 직전인데다 원사 가격마저 오르면 문을 닫아야 한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효성도 더 이상 물러서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렇게 올려도 예정가격의 20% 정도만 반영시킨 겁니다. 원료 가격이 올랐는데 어떡합니까.”(양명식 마케팅팀장)

국제 유가가 오르면서 원유에서 추출되는 원자재 값이 연쇄 상승하고 있다. 여기에 유가 급등세도 예상보다 장기화할 조짐이다.

이 때문에 유류(油類) 의존형 업종은 물론 산업계 전반에 고유가에 따른 경영 압박이 현실화하고 있다. 또 성장률 둔화와 물가 상승 등 경기 회복이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2일 중동산 두바이유는 전날보다 0.56달러 오른 배럴당 30.82달러에 거래돼 작년 2월 25일(31.19달러) 이후 1년여 만에 최고치였다. 북해산 브렌트유도 33.56달러로 0.78달러나 급등했다.

▽항공사 비상경영 검토=아시아나항공은 올해 초 연평균 유가를 배럴당 29달러(두바이유 기준)로 예상하고 경영계획을 짰다. 하지만 최근 유가가 치솟으면서 경비 절감, 비수익 노선의 탄력적 운용 등 비상경영 체제 돌입을 검토 중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유가가 예상보다 1달러 오르면 연간 150억원의 추가 부담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항공도 인천 율도와 김포공항 저장 탱크에 30일분의 원유를 비축하고 있지만 유가가 계속 오르면 피해가 불가피하다고 보고 대응책 마련에 고심 중이다.

SK㈜는 올해 경영계획에서 연평균 유가를 24.8달러에 맞췄다. 이에 따라 현물시장에서 싼 값에 원유를 구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1년 단위로 미리 매입 물량 계약을 체결하는 비중을 낮추고 그때그때 싼 값에 원유를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올해 유가를 25달러로 예상한 LG칼텍스정유도 중동지역 수입 비중을 60%로 낮추는 대신 동남아시아나 남미 등으로 수입처를 다양화해 유가 상승에 따른 손실을 최소화한다는 방침이다.

▽화섬업계 “엎친 데 덮친 격”=원유 정제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을 원료로 이용하는 업체들은 유가 상승에 따른 직접적인 피해를 보고 있다. 나프타 등을 이용해 플라스틱 제품에 이용되는 중간재를 만드는 만큼 원가 상승분을 그대로 가격에 반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화학섬유 업계는 경기 악화에 원료 값 상승까지 겹쳐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위기에 몰렸다.

실제 나일론의 원료인 카프로락탐 가격은 지난해 t당 1164달러에서 지금은 1340달러에 이른다. 폴리에스테르 원료인 TPA도 t당 593달러에서 750달러로 급등했다.

이 때문에 효성이나 코오롱 등 화섬업체들은 판매가격을 올리려 하지만 수요처인 직물 업체들이 이를 수용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석유화학 업계도 유가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당장은 중국 수요 증가로 수출 가격에 원가 상승분을 전가할 수 있지만 고유가가 장기화하면 부담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고기정기자 koh@donga.com

이병기기자 eye@donga.com

김두영기자 nirvana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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