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미국 피델리티 본사는 당시 일본피델리티투신운용 대표로 부임하는 빌 와일더 사장에게 이 같은 경영지침을 내렸다. 와일더 사장은 시장점유율 경쟁은 제쳐두고 투자자 교육에 신경을 쏟았다. 일본 투자자들이 장기투자의 장점을 인식하면서부터 펀드 판매는 서서히 늘어났다. 결국 일본피델리티는 와일더 사장 취임 이후 5년 만에 이익을 냈다. 외국계 자산운용사의 장기 경영전략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피델리티는 늦어도 올해 9월부터 한국에서 펀드 판매 및 자산운용 영업에 들어가기로 했다.
이에 따라 국민은행 우리금융 미래에셋 동원금융지주 등 국내 토종회사들은 비상이 걸렸다. 자산운용업무를 대폭 확대하고 있지만 자본력과 영업능력에서 외국계에 밀리기 때문이다.
4일 자산운용업계에 따르면 푸르덴셜 피델리티 등 외국계 자산운용회사들이 한국 내 영업을 본격화하면서 국내외 업체들이 자산운용시장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칼라일 올림푸스 뉴브리지캐피털 등 사모주식펀드(PEF)들은 한국투신 대한투신 등 대형 투신사 인수를 통해 자산운용시장에 뛰어든다는 전략을 갖고 있다.
푸르덴셜 금융그룹은 올 상반기 현대투신과 지난해 경영권을 확보한 제일투신운용을 합병하여 펀드 수탁액 22조원대의 국내 최대 자산운용사를 설립하기로 했다. 삼성투신(17조원대)을 제치고 외국계 금융회사로는 처음 업계 1위로 올라서는 것.
외국계 운용사의 국내 시장점유율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2000년 말 4%대에서 올 2월 말 현재 약 31% 수준으로 급성장했다.
올해 상반기에 매각될 예정인 한투와 대투 중 한 곳을 외국계가 가져가고, 랜드마크 투신운용 등 외국계 운용사의 국내사 인수합병이 성사되면 올해 안에 외국계의 시장점유율은 50%를 훌쩍 넘어설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자산운용업체 관계자는 “급성장하고 있는 자산운용시장을 외국계에 내주지 않으려면 국내 업체들도 자본력을 확충하고 자산운용 노하우를 향상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강운기자 kwoon90@donga.com
황재성기자 jsonh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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