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혈통 파괴’ 급속 확산

  • 입력 2004년 3월 8일 18시 56분


외국계 은행과 제2금융권 출신 인사들이 속속 은행장 자리를 차지하면서 은행권 내에서 ‘국내 은행 출신 인사’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우리은행장을 겸임할 예정인 황영기(黃永基) 우리금융지주회사 회장 내정자는 파리바은행, 뱅커트러스트 은행 등 외국계 은행과 삼성생명 삼성투신운용 등 제2금융권을 거쳐 삼성증권 사장을 지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과 대한투자신탁증권 사장을 지낸 이덕훈(李德勳) 현 우리은행장에 이어 제2금융권 출신이 연달아 행장으로 영입된 것.

자산 규모 1위인 국민은행의 김정태(金正泰) 행장은 동원증권 사장 출신이어서 국내 1, 2위 은행의 행장을 모두 제2금융권 출신이 차지한 셈이다.

외국계 은행 출신의 약진도 두드러진다.

지난해 8월 취임한 최동수(崔東洙) 조흥은행장은 체이스맨해튼 은행, 하영구(河永求) 한미은행장은 씨티은행 출신이며 제일은행의 로버트 코헨, 외환은행의 로버트 팰런 행장은 아예 외국인이다.

토종 국내은행 출신을 꼽자면 8개 시중은행 가운데 신상훈(申相勳) 신한은행장과 김승유(金勝猷) 하나은행장 정도. 하지만 김 행장 역시 하나은행의 전신인 한국투자금융 출신이어서 제2금융권 출신으로 분류된다.

최근 진행되는 부행장 본부장급 인사에서도 비은행 출신이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A은행 고위 관계자는 “은행의 사업 영역이 날로 확대되는 상황에서 대출과 예금 등 단순 업무에 익숙한 토종 은행권 출신은 경쟁력이 떨어진다”며 “능력 개발에 노력하지 않으면 조만간 순수 은행 출신은 임원이 되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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