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들어서만 8, 9일 이틀 동안 미국 뉴욕과 영국 런던에 본거지를 둔 5개 외국계 펀드가 동원지주를 다녀갔다. 지난달에는 4개사가 방문했었다.
이들은 하나같이 ‘실적전망이 좋은데도 주가는 싼 이유’를 집중적으로 물었다. 눈에 띄는 점은 외국계 펀드 대부분이 한국 주식에 처음 투자하는 ‘신출내기’펀드라는 것.
동원지주 관계자는 “그 흔한 삼성전자 주식이 없는 외국계 펀드들이 여전히 많다는 사실에 놀라고, 기업방문 후 이들이 던지는 ‘사자’주문 규모에 또 한번 놀란다”고 귀띔했다.
▽외국인들의 한국물 ‘사자’ 열풍=국내 내수경기 회복이 요원한 가운데 외국인들의 한국 주식 매수 열기는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이들이 한국주식을 사는 논리는 ‘실적이 좋은데 주가는 싸다’는 것이다.
외국인들은 9일 1000억원대 순매도로 돌아섰지만 올해 들어 8일까지 7조5390억원어치의 주식을 샀다. 작년 순매수 물량의 절반을 웃도는 공격적인 매수세다. 한국 증시에 데뷔한 ‘새로운 얼굴’들도 많다. 1월 말 현재 금융감독원에 등록한 외국인투자자들은 모두 1만5449명. 매달 평균 100명 이상씩 증가하고 있다.
특히 영국계 자금의 약진이 눈에 띈다. 영국계 자금의 국내 증시 거래대금 비중은 작년 7월 평균 12.7%에서 최근엔 평균 20% 이상으로 크게 높아졌다. 영국계 연기금 전문운용사인 허미스(Hermes)는 올해 현대해상화재 새롬기술 삼성물산 등의 지분을 5% 이상 확보하면서 한국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내수는 부진한데 왜 사나=방대한 외국인 주식매수자금의 원천으로는 △세계적인 저금리추세 △달러화 약세로 인한 비(非)달러화자산 투자증가 △중국효과 등 세 가지로 집약된다.
미국투자신탁협회(ICI)에 따르면 미국 증시의 유동성을 좌우하는 뮤추얼펀드 수탁액은 올해 1, 2월 총 720억달러가 신규 유입됐다. 이는 2003년 순유입 규모(약 1500억달러)의 절반에 육박하는 규모다. 이 중 10%가량이 한국 관련 펀드에 투자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인들은 특히 아시아 증시 가운데 지난해 상대적으로 오름폭이 적고 FTSE지수 선진증시 편입 기대감이 높은 한국과 대만증시를 집중 공략하고 있다.
메릴린치증권 이원기 전무는 “부진한 내수경기는 외국인 투자의 걸림돌이 아니다. 해외시장에서 돈 잘 버는 기업들이 있는 한 한국은 외국인들에게 매력적인 투자처”라고 말했다.
▽외국인 자금 계속 들어올까=외국인 자금 추가유입 가능성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린다. 메릴린치 이 전무는 “한국에 투자를 하지 않던 선진국 펀드들이 한국증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며 “일부 펀드는 한국물을 막 사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LG투자증권 박윤수 상무는 “미국의 고용회복이 늦춰지면서 당분간 저금리 및 달러화 약세 기조에는 변화가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대해 JP모건 증권 이승훈 상무는 “3월을 고비로 외국인 매수세가 꺾이면서 4월부터는 현저히 약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전 세계 정보기술(IT) 경기가 점차 둔화기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교보증권 임송학 리서치센터장도 “한국 증시는 미국 나스닥증시 부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외국인 자금유입은 1·4분기가 정점이 될 것”으로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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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운기자 kwoon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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