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초 선진7개국(G7) 재무장관 회담 이후 빠른 속도로 떨어진 엔화가치는 8일 존 스노 미 재무장관이 일본의 인위적 시장개입을 비판하면서 하락세에 제동이 걸렸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기업의 수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환율 관리’를 계속할 뜻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엔화 하락폭이 커지면 선진국 시장에서 일본과 경쟁하는 한국 중국의 수출도 타격을 받게 돼 마찰이 예상된다.
▽‘미스터 거액 개입’의 의욕=지난달 초 달러당 105엔선까지 치솟았던 엔화가치는 일본 외환당국이 거의 매일 시장개입에 나서면서 8일 112.30엔까지 떨어졌다. 작년 9월 말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지난해 사상 최대인 20조엔어치의 시장개입을 단행한 일본은 올해 들어서도 2개월간 10조엔가량을 쏟아 부었다.
엔화강세가 한풀 꺾였는데도 개입에 집착하는 것은 이번 기회에 아예 엔저 기조를 굳히려는 의도라고 일본 언론은 풀이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시장개입 정책을 주도하는 미조구치 젠베(溝口善兵衛) 재무성 재무관이 주목을 받고 있다. 1990년대 후반 사카키바라 에이스케(신原英資) 당시 재무관이 ‘미스터 엔’으로 불렸던 것에 빗대 ‘미스터 거액 개입’이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
지난해 초 취임한 그는 구두개입을 선호한 역대 재무관들과는 달리 시장에서 직접 엔화를 팔고 달러를 사들이는 물량투입 방식을 즐겨 쓴다. 수출 주도의 경기회복이라는 명분을 내세운 그의 정책에 재계는 반색하지만 과잉 개입의 부작용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환율전쟁으로 번질 수도=G7 회담 후 비판을 자제하던 미국은 일본의 개입이 노골화하자 반격에 나섰다.
이달 초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일본의 외환정책을 비판한 데 이어 스노 재무장관도 “역사적으로 통화가치를 떨어뜨려 경제적 번영을 이룬 예가 없다”고 가세했다. 민주당 대선후보 존 케리 상원의원의 보좌관인 클라이드 프레스토비츠 경제전략연구소장은 10일 “일본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은 수출보조금에 해당하는 것으로 일종의 보호주의”라고 공격했다.
미국으로부터 위안화 절상 압력을 받고 있는 중국이 일본의 환율조작에 반발해 평가절상을 거부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일본의 엔화하락 속도가 빨라지면 한국 제품의 가격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한국도 낙관할 수만은 없는 처지다.
도쿄=박원재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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