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조인직/엎친데 덮친 건설업계

  • 입력 2004년 3월 11일 18시 39분


“철근문제가 예상보다 심각합니다. 예전엔 이렇게 안 좋다가도 곧 ‘대안’이 보였는데 요즘의 원자재난은 금방 끝날 것 같지가 않아요.”

11일 기자와 만난 쌍용건설 김석준 회장은 요즘 건설업계에 들이닥친 ‘원자재 파동’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김 회장은 10년쯤 전의 ‘시멘트 파동’과 최근의 상황을 비교했다. 당시에는 시멘트가 귀해져도 ‘값싼 중국산’이 있었으니 업체마다 수입해 국산과 반씩 섞어 쓰면서 채산성을 맞출 방법이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최후의 보루’로 여겨지는 중국에서 원가 상승을 부추기니 난감하다는 말이었다.

쌍용에서는 올 한 해 철근 한 품목에만 들이는 추가예산이 200억∼3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다. 그나마 쌍용 같은 대기업에서는 ‘무슨 수를 쓰든지’ 물량을 확보해 공사기한을 맞추고 입주날짜를 지킬 것이라고 하지만, 중견업체들은 ‘외환위기 때보다 더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다’며 떨고 있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A 중견업체 임원은 “철근이 없으니까 공사를 할 수가 없다. 현금이 돌지 않는데 하도급 업체들은 무슨 수로 일을 하나. 가시적인 대책이 없으면 연쇄 부도가 불가피하게 될 것”이라며 푸념했다.

요즘 건설업계는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원자재는 한 달 새 2.5∼3배 가까이 올랐고, 그나마 재고가 없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시장논리에서 보자면 분양가가 올라야 정상이지만, 시민단체의 ‘분양가 인하’ 요구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업계는 또 ‘도덕적으로도 지탄받는다’며 하소연이다. 대선자금 수사를 통해 건설업계가 마치 ‘정치권 비자금 전담 공급책’이나 되는 것처럼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다는 것. 일부 중견업체 사장들은 실제로 “한 1년쯤 사업 안 하고 있는 게 더 나을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고용창출이나 부동자금 흡수, 관련 산업 부양 등의 측면에서 건설업계가 내수 경기 진작에 미치는 파급 효과는 엄청나다. 특히나 요즘처럼 수출과 내수가 엇박자인 국면에선 더더욱 그렇다. 건설업체들이 난국을 뚫고 다시 한번 한국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조인직기자 cij19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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