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측에선 T사 펀드의 판매 중단 여부를 놓고 고민했다. 그러나 씨티은행 판매담당자의 생각은 달랐다. “운용사의 운용철학과 시스템을 믿고 상품판매를 결정한 것인데 수익률이 기대에 못 미친다고 판매를 중단할 수 없다.”
결국 IT 버블이 꺼지면서 수익률은 역전됐고 외국 운용사의 펀드는 대성공했다.
2003년 초의 일이다. 일본에 있는 미국계 운용사 관계자가 한국의 펀드판매 현황을 둘러보기 위해 방한했다. 이 관계자는 대단히 실망했다. 그가 한국의 펀드판매 시장에 대해 내린 평가는 매우 신랄했다. “고객에게 원금보장 등 책임지지 못할 ‘약속’을 하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다. ‘팔면 끝’이라는 생각은 나중에 큰 화(禍)를 부른다.”
한 전환증권사 L차장이 귀띔한 주식브로커 업무방식도 신선하다. 그는 고객에게 종목을 추천할 때 투자리스크를 ‘귀가 따갑도록’ 반복했다고 한다. 투자종목을 권해 매매를 성사시켜야 하는 주식브로커가 ‘투자위험’을 강조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 하지만 L차장의 이런 영업전략은 주가 급락기에 주효했다. 그의 고객은 손해를 덜 봤고 손해를 보더라도 그를 탓하지 않았다.
세 가지 케이스는 모두 증시의 최일선에서 고객을 만나는 ‘증권맨’들에 대한 이야기다. 운용성적이 좋아야 하지만 장기적인 안목에선 판매자의 책임감과 도덕성이 간접투자상품 정착에 더 중요함을 알 수 있다. 최근 증권사 랩어카운트 상품이 잘 팔리고 있지만 2000년 ‘바이 코리아’의 후유증이 떠오르는 것은 필자만의 기우(杞憂)일까.
이강운 기자 kwoon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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