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LG “Win-Tel을 막아라”…DTV시장에 MS-인텔 도전장

  • 입력 2004년 3월 16일 19시 07분


세계 디지털TV와 디스플레이 시장을 석권해 글로벌 초우량기업으로 도약하려는 삼성과 LG의 전략에 ‘빨간불’이 깜박거리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이 가장 우려하는 점은 디지털TV산업의 구조가 PC산업처럼 되는 것.

PC는 중앙처리장치(CPU)와 운영체제(윈도 등)를 사실상 독점한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MS)가 산업의 부가가치를 대부분 가져갔다. PC산업은 컴퓨터업계의 강자였던 컴팩도 고전하다 HP에 합병될 정도로 ‘제조업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산업.

▽너도나도 디지털TV=삼성과 LG의 첫 도전자는 비(非)가전기업들. PC업체는 물론 통신기기업체, 오디오 전문기업까지 액정표시장치(LCD)나 플라스마디스플레이패널(PDP)을 디스플레이로 사용하는 평판TV 시장에 진입한 것.

포문은 미국 PC업체인 게이트웨이가 열었다. 이 회사는 진입 1년 만에 미국과 캐나다 PDP 시장에서 시장점유율 10%를 기록하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델, HP, 야마하 등 비가전기업 50여개가 디지털 가전제품 시장에 진입하고 있다.

LG경제연구원 배수한 책임연구원은 “디지털TV가 고수익사업으로 떠오르고 핵심부품인 디스플레이 조달이 용이하게 되면서 비가전기업들이 대거 TV시장에 뛰어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브라운관과 달리 LCD와 PDP는 생산업체가 많고 대량 생산이 상대적으로 쉽다. 일본과 대만은 물론 중국도 생산 경쟁에 나섰다.

디스플레이 시장의 공급과잉은 TV산업을 수직계열화한 삼성과 LG의 경쟁력을 반감시킨다. 또 원가 이하로 가격이 떨어질 경우 디스플레이 사업 자체가 부담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비가전기업들은 가격 경쟁력도 갖고 있다.

델의 최고경영자 마이클 델은 “가전제품에 가격 거품이 많다”며 “델이 가전시장에 진출해 거품을 제거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비가전기업의 LCD TV 가격은 가전업체 제품보다 20∼30% 싼 편이다.

미국 업체들이 대만의 LCD와 PDP 등을 이용해 중국에서 TV를 생산한 뒤 세계시장에 저가 TV를 대량 공급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윈텔(Win-tel)의 영광을 다시 한번=가전업체들이 가장 경계하는 대상은 인텔과 MS.

인텔은 PC시장이 한계에 다다르자 디지털 가전제품 시장을 두드리고 있다. 전략은 PC처럼 디지털TV의 CPU를 개발하는 것. 칩 하나에 CPU는 물론 화상 칩과 메모리 및 비메모리 반도체를 통합하는 기술도 개발하고 있다.

이는 본격적인 디지털TV 시대가 열리면 TV는 PC와 인터넷 기능을 갖춰야하기 때문에 인텔의 기술력이 유리하다는 계산에 따른 것.

또 LCD나 PDP에 버금가는 디스플레이 기기를 개발하고 이 장치의 핵심 칩을 장악하겠다는 것이 인텔의 복안이다.

현재 가장 유력한 대안은 프로젝션TV. 인텔 외에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도 여기에 승부를 걸고 있다.

MS 역시 올해 초 TV용 운영체제인 미디어 익스텐더를 선보이는 등 가전제품의 운영체제를 장악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PC처럼 모든 디지털 기기에 윈도 같은 MS의 운영체제를 깔겠다는 것.

삼성경제연구소 김재윤 수석연구원은 “두 회사의 전략이 성공한다면 디지털 가전 시장은 PC처럼 인텔과 MS에 제조업체들이 휘둘리게 된다”고 경고했다.

▽한국기업의 대응=삼성과 LG는 비가전기업의 TV시장 진출을 저가용 TV에 국한시킬 방침이다.

TV는 PC처럼 표준화된 상품이 아니라 각사의 기술에 따라 화질 차이가 있고 브랜드 파워도 중요하다. 또 40인치 이상 대형 TV는 서비스 인력이 가정을 방문해 설치해야 하기 때문에 소비자가 가격만 보고 구입하지 않는다는 것.

LG전자 디지털TV연구소 조용호 차장은 “저가 TV 시장의 일정 부분을 내줄 수밖에 없지만 디자인과 화상처리기술에 집중해 비가전업체와 차별화하는 전략을 펴야 한다”고 말했다.

LCD와 PDP도 D램 반도체처럼 몇 차례 공급과잉과 가격전쟁을 겪겠지만 이미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는 것이 삼성과 LG의 판단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LCD나 PDP도 메모리반도체처럼 적기에 대규모 투자를 해 가장 저렴한 제품을 생산하면 승자가 되는 분야”라며 “최종 승리자는 한국 업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과 LG는 인텔과 MS의 진출에 대해 두 회사의 잠재력을 인정하면서도 PC산업의 학습효과로 디지털 가전 산업에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이용화 수석연구원은 “기술개발에 집중하는 한편 한국과 일본, 대만 업체간 전략적 제휴를 통해 인텔과 MS의 디지털 가전 산업의 지배를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병기기자 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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