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공간에서 백화점은 꽤 흥미로운 장소다. 인간의 소비 욕망이 한 곳에 응축된 곳이기 때문이다.
국내 백화점의 효시는 신세계백화점의 전신 격인 1930년대 일본 미쓰코시백화점의 경성 분점이다. 당시 외제 승용차를 타고 온 부르주아층 손님은 모던한 물건을 구경했다.
그로부터 60여년이 흐른 1997년 갤러리아백화점 압구정점이 샤넬 등의 수입 브랜드를 처음 소개하며 명품관을 자칭한 이후 백화점은 바야흐로 ‘명품시대’로 진입했다.
최근 들어 현대백화점 압구정 본점, 갤러리아 압구정점,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등 서울 강남지역 백화점들은 다시 치열한 명품 경쟁을 시작했다. 높은 수준과 안목을 가진 21세기 손님은 디자인과 스타일이 있는 명품을 원한다.
○ 변화
5일 신세계 강남점이 여성 전용 쇼핑 공간 퀸즈몰을 열어 매장 면적을 기존 9000평에서 1만3000평으로 확장했다.
갤러리아 압구정점 패션관은 7월 한 달간 문을 닫고 새 건물로 단장한다. 현재 이 백화점 명품관에 있는 루이뷔통과 구치가 이곳으로 옮겨 온다.
현대 압구정 본점도 최근 이례적으로 프라다를 내보내고 백화점이 직접 운영권을 갖는 이탈리아 피혁 브랜드 토즈 매장을 12일 국내에 처음 열었다.
○ 고객
1980, 90년대 압구정동 사람들과 풍요를 함께 누린 현대 압구정 본점에는 여유롭고 세련된 40대 이상 중년 여성 고객이 많다.
갤러리아 압구정점에는 패셔너블한 20대의 발걸음이 잦아 톱 탤런트도 남의 시선에 신경 안 쓰고 자유롭게 쇼핑할 수 있다.
2000년 문을 연 신세계 강남점은 편리한 식품 매장으로 30대 미시족을 단기간에 끌어들였다. 각기 성향은 달라도 구매력 높은 강남 소비자들은 명품 브랜드에 대한 이해 또한 높다.
취재기자의 관찰에 따르면 이들의 공통된 요즘 패션은 세븐 진 청바지에 샤넬 핸드백을 드는 것이었다.
○ 브랜드
신세계 강남점은 이명희 회장 일가의 뛰어난 패션 안목으로 오픈 3년여 만에 ‘패션 백화점’이 됐다. 이 회장 자신은 아크리스, 로로 피아나 등 우아하고 편안한 분위기의 브랜드를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대대적 브랜드 보강에도 불구하고 샤넬과 에르메스를 입점시키지 못해 명품 백화점으로서 한계를 가진다. 두 브랜드는 현대 압구정 본점과 갤러리아 압구정점에서 매출 1, 2위를 지킨다. 이들 브랜드가 빠진 신세계 강남점의 매출 1위는 루이뷔통이다.
국내 브랜드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수료를 받으며 명품 브랜드 유치에 사활을 걸었던 백화점 업계는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브랜드 속에서 선택과 집중을 요구 받는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매장 임대 계약 기간이 끝난 프라다가 매출이 저조해 재계약하지 않았다”며 “디자인 혁신이 없는 명품 브랜드 대신 개성있는 브리지 라인을 강화하려 한다”고 말했다.
○ 전략
명품이라는 단어를 국내에 처음 유통시킨 갤러리아 압구정점은 발빠른 트렌드 감지력과 실험적인 머천다이징이 강점. 만인을 위한 백화점(百貨店) 대신 차별화된 삼십화점(三十貨店)을 추구한다.
1990년대 초반 마리테 프랑수아 저버 등 청바지 브랜드를 과감히 유치해 청바지 신드롬을 만들어냈던 패션관은 지난해 직영 편집 매장을 통해 수입 청바지 붐을 일으켰다. 이는 신세계 강남점이 최근 ‘블루 핏’이라는 이름의 청바지 존을 신설한 직접적 계기.
레니본(2000년), 바네사 브루노(2003년) 등 신생 브랜드의 테스트 마켓으로도 각광 받는다.
그러나 조만간 명품관의 일부 브랜드가 패션관으로 옮겨지면 패션관의 독창적 캐릭터가 희석될 우려가 있다.
○ 구역(Zoning)
강남지역 백화점의 요즘 최대 화두는 독창적인 쇼핑구역 창출이다.
신세계 강남점은 1층에 아시아 최대 규모의 화장품 존을 형성하고, 8층은 아동·란제리 전용 매장으로 꾸몄다. 퀸즈몰 한쪽에는 널따란 휴게공간을 둬 여성의 쇼핑을 지루해하는 남성들의 대기 장소를 제공한다.
2층에는 보석 판매존을 별도로 마련했다. 갤러리아 압구정점도 5월 명품관 2층에 해리 윈스턴, 미키모토 등 최고급 보석 브랜드를 선보인다. 현대백화점은 다음달 ‘신진 디자이너 발굴 프로젝트’를 통해 국내 디자이너 편집매장을 연다.
브랜드가 백화점의 이미지를 대변하는 시대, 쇼핑의 복잡 과학시대가 전개되고 있다.
김선미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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