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메이드 코스메틱 브랜드 ‘러시’는 웰빙 트렌드의 최전선에 있다. 러시의 제품은 직접 먹지는 못해도 거의 식품에 가깝다. 방부제 없이 천연재료로 재래방식에 따라 만든 고체 샴푸, 비누, 클렌징 제품 등에는 초콜릿이나 사과 꿀, 곡류가 그대로 들어 있다. 유통기한도 있다. 모든 제품에는 제조연월일이 필수적으로 표시된다. 유통기한은 통상 14개월. 마사지크림은 냉장보관이 원칙으로, 3주 이상 쓸 수 없다.
2002년 12월 문을 연 러시는 웰빙열풍 속에서 줄곧 인기가 상승세다. 광고도 내지 않는데 입소문이 빠르게 번져 매장은 늘 붐빈다. 이 같은 성공을 이끈 사람이 러시 한국지사인 ㈜열심히의 우미령 사장(32)이다. 비누를 파는 사람이어서 그런 걸까. 때 묻지 않은 참한 느낌이 인상적이다.》
○ 회사 이름처럼 十心喜
재생용지로 만든 명함의 이름 옆에는 ‘보헤미안’이라고 쓰여 있다. 러시 제품명 가운데 하나고, 우 사장의 애칭이기도 하다. 러시 직원들은 모두 제품명을 각자 애칭으로 쓴다. 우 사장은 보헤미안이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린다고 했다. 자신의 인터뷰 기사를 끝까지 못 읽을 정도로 수줍음을 잘 탄다는 그가 보헤미안이라니…. 그의 경력이 그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우 사장은 보석가게를 운영했던 어머니를 따라 어렸을 때부터 보석디자이너를 꿈꿨다. 대학(동덕여대 건강관리학과) 졸업 후 1995∼97년 미국보석감정연구소(GIA)에서 보석감정과 디자인을 전공했다. 보석 일을 하다가 2001년에는 ‘평소 해보고 싶던’ 웨딩사업을 시작했고, 부업 삼아 친구의 청소용역업체 일을 도와주기도 했다.
2002년 ‘러시 저팬’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러시를 알게 됐다. “과자나 장난감 같은 화장품에 반했죠. 동물실험에 반대하고 천연재료를 이용한 전통적 수공업 방식을 고집하는 경영 철학에도 끌렸고요.” 마크 콘스탄틴 러시 영국 본사 대표는 동물실험을 하는 회사로부터는 납품을 받지 않는다. 모피나 짐승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은 사람은 회사 출입을 금한다.
우 사장은 곧바로 영국 본사에 한국지사 계약 의사를 전했다. 그러나 이미 대기업을 포함해 5, 6개 기업이 경합을 벌이던 상황. 가장 늦게 접촉한 데다 자금력도 한참 처졌지만 본사는 우 사장을 선택했다. 덩치를 늘리기보다 러시를 알차게 키워줄 ‘베이비 시터’에 적합하다고 판단한 것. 대학 졸업 뒤 줄곧 소매업에 종사한 경력도 후한 점수를 받았다.
회사 이름은 한글로 ‘열심히’다. 한자로 풀자면 ‘十心喜’. ‘열 가지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서 기쁘게 일하고 고객들도 기쁘고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열심히 하자’는 뜻이다.
러시는 2002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명동 1호점을 오픈한 뒤 9개월 만에 삼성동, 부천 LG백화점, 신촌 현대백화점, 압구정동 등 4개의 직영 매장을 추가로 열었다. 지난해 매출은 18억원.
○ 대책없는 낙관주의자?
러시에는 매장 직원까지 포함해 모두 30명이 있다. 채용 절차는 면접뿐이다. ‘러시를 사랑하고, 밝게 웃고, 적극적인 사람’이 가장 중요한 채용 기준이다. 밝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우 사장의 성격이 묻어난다. 첫 매장 오픈 때는 준비가 제대로 안돼 개점일을 늦춰야 하는 상황에서도 ‘일단 열고 보자’며 물건과 계산대만 가져다 두고 손님을 받은 ‘대책 없는 낙관주의자’다.
우 사장은 직원 하나하나를 열심히, 정성껏 대한다. 주위에서 “직원들을 너무 가깝게 대한다”고 우려할 정도. 직원들도 “사장이라기보다 언니 같은 분”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 때문인지 직원들의 회사 사랑은 유별나다. 직원들끼리 인터넷 친목 카페를 만들고 메신저로 채팅을 할 정도로 사이가 좋다. 우 사장은 “직원들이 ‘러시에 뼈를 묻겠다’는 말을 자주 해요. 잘해준 것도 없는데 미안하죠”라고 말한다.
본사에서 신제품이 들어오면 손님보다 먼저 직원들이 ‘감동’하고 ‘흥분’하며 앞다퉈 써 본다. 자신이 좋아하는 제품을 팔다 보니 손님에 대한 구매 설득력이 배가되고, 자연히 매출 증가로 이어진다. 사업가다운 계산 빠른 모습은 찾아보기 힘든 그가 회사를 급성장시킨 배경은 바로 이거다 싶다.
○ 꿈많은 나비 좇는 소녀
우 사장은 나비를 유난히 좋아한다. 각종 액세서리는 나비 모양이 대부분인 데다 전에 운영했던 웨딩드레스 업체의 이름도 ‘나비 웨딩’이었다. 그는 나비가 주는 섹시한 느낌과 형형색색의 다양한 무늬를 좋아한다. 하기야 누드모델 이승희의 상징 역시 ‘버터플라이’ 아니었던가.
그는 페미닌한 스타일의 옷을 즐겨 입는다. 노출이 없으면서도 라인을 살려 여성적인 매력이 느껴지는 장 프랑코 페레의 스타일을 주로 찾는다. 평균적인 한국인보다 골격이 큰 편이어서 쇼핑은 주로 해외 출장 기간을 이용한다.
전공은 보석디자인이지만 귀고리를 제외하고 장신구는 거의 하지 않는 편. 보석디자인을 할 때도 자신이 좋아하는 다이아몬드 귀고리만 만들었다.
그의 남편은 멀티미디어 상품권을 개발·생산해 주목받고 있는 벤처사업가 장승웅 ㈜DNS 사장(31). 남편의 패션 센스를 묻자 손사래를 친다. “자기 어머니한테 점잖치 못하다고 손톱에 매니큐어도 못 칠하게 하는 사람”이라며 결혼 후 지금까지 5개월 동안 ‘남편 개조작업’에 가장 공을 들였다고 한다. 그러나 “청소나 요리 등 집안일은 척척 해 준다”고 자랑이 더하다. 결혼 1주년이 되는 올 10월 첫 아기가 태어날 예정이다.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더니 우 사장의 꿈은 끝이 없다.
“일단 러시가 잘 되는 게 목표죠. 교육사업과 공연사업을 하고 싶고, 예술학교도 세우고 싶어요. 호텔도 하나 했으면 하고…. 중년이 되면 전공인 보석디자인을 다시 시작할 겁니다. 아이는 셋 정도 낳으면 좋겠어요.”
사업뿐 아니라 엄마 욕심도 대단하다. 직원들에게 ‘별 헤는 소녀’ ‘나비 좇는 소녀’로 불리는 우 사장이 어디까지 날갯짓을 할지 기대해 본다.
곽민영기자 havef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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