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카드업체 채권추심 직원인 윤모씨는 18일 연체고객들로부터 똑같은 대답을 들었다. 배드뱅크(신용회복지원은행) 설립을 담은 정부의 신용불량자 대책의 세부안이 17일 발표됐기 때문이다.
윤씨는 “3월 10일 이전에 신용불량자로 등록된 사람만 배드뱅크 대상이 된다고 설명해 줘도 ‘돈 받으려고 거짓말하지 말라’며 오히려 화를 낸다”고 푸념했다.
우려했던 정부 신용불량자 대책의 후유증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금융회사 연체고객 중 상당수가 “시간만 끌면 언젠가 정부가 구제해 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버티기’에 들어갔다.
▽금융회사 연체율 급등=A은행의 경우 정부의 신용불량자 대책이 가시화되기 전인 2월 말 현재 1.19%였던 가계대출 연체율이 이달 15일 기준으로 1.24%로 0.05%포인트 증가했다. 또 이 은행 신용카드 연체율도 3.81%에서 4.02%로 0.21%포인트 높아졌다.
이 은행의 고위 관계자는 “보통 3월 말이 되면 1·4분기(1∼3월) 채권회수 실적을 높이기 위해 추심을 강화하기 때문에 연체율이 줄어드는데 정부 대책의 영향으로 거꾸로 연체율이 늘고 있다”고 우려했다.
채권추심 직원들이 고객들에게 전화했을 때 본인과 직접 전화가 연결되는 ‘통화 성공률’도 급속히 낮아지고 있다. 한 카드업체의 채권센터 관계자는 “배드뱅크 구상이 알려진 지난주 이후 연체자들이 전화를 회피하면서 통화성공률이 20%가량 낮아졌다”고 말했다.
▽빚 갚으면 바보=이모씨(39·여)는 “신용불량자가 안 되려고 연 22∼27%나 되는 대환대출 이자를 갚느라 애들 과자도 못 사줍니다. 왜 정부는 저희 같은 사람은 놔두고 신용불량자들만 돕는 겁니까”라며 분노를 터뜨렸다.
다른 신용회복 절차를 밟고 있는 신용불량자들도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4500만원의 빚을 져 신용불량자가 됐다가 지난해 12월 신용회복위 채무조정을 받아 6년간 연 10%의 이자를 갚고 있는 서모씨(53). 그는 “매달 95만원씩 빚을 갚느라 힘이 들어 배드뱅크를 이용하려고 했더니 이미 개인워크아웃이 시작된 사람은 대상이 아니라고 해 실망했다”고 말했다.
▽성급한 정부대책=정부의 신용불량 대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금융계에서 확산되고 있다.
한 시중은행장은 “획일적인 기준을 제시하는 순간 불량채무자들의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는 피할 수 없었다”며 “개별 금융회사에 맡겨뒀으면 차차 해결됐을 신용불량자 처리에 정부가 조급증을 보이면서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준재(李峻宰) 동원증권 애널리스트는 “정부는 경기 회복기를 기다려 자기 힘으로 돈을 벌어 갚을 수 있는 사람들을 일단 걸러낸 뒤 대책을 내놓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
신석호기자 kyle@donga.com
김창원기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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