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박승(朴昇) 총재 주재로 열린 금융협의회에 참석한 은행장들은 한 목소리로 모럴 해저드 확산을 우려했다. 정부가 신용불량자 대책을 발표하자 빚 안 갚기 현상이 늘면서 연체율도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장은 이날 회의에서 "원래 1·4분기(1~3월)가 끝나는 3월에는 연체율이 낮아져야 하는데 정부의 대책 발표 이후 가계대출과 신용카드의 연체율이 상승하고 있어 신용불량자 대책 시행과정에서 철저한 대비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은행은 물론 신용카드사 등 금융권은 정부의 신용불량자 대책이 오히려 신용불량자를 늘릴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기다리면 정부가 뭔가 해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확산되고 있다"며 "정상적으로 빚을 갚으려는 사람은 줄고 있어 '잠재 신용불량자'들 중 상당수가 신용불량자로 넘어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한정태(韓丁太) 미래에셋증권 애널리스트는 "새로운 신용불량자가 급증할 경우 상황은 심각해져 올해 은행이나 신용카드업체의 경영상황을 크게 악화시킬 수 있다"면서 "정부가 신용불량자나 잠재 신용불량자의 근거 없는 기대감을 차단하기 위해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은행들은 당장 이달 말까지 연체율이 급증하는 것을 막기 위해 긴급 대책회의를 열어 대응방안 마련에 나섰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A은행 채권추심 담당자는 "연체율 상승을 막으려면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등의 한도축소와 대출금 회수 등의 조치를 해야 한다"면서 "그러나 정부가 은행에 가계대출 등의 만기를 연장해주도록 요청하면서 빚 독촉도 무리하게 하지 말라고 요구하고 있어 연체율을 낮출 수단이 거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금융권의 우려를 의식한 듯 정부도 뒤늦게 도덕적 해이의 확산을 막기 위해 "더 이상의 대책은 없다"며 못을 박고 나섰다.
이헌재(李憲宰)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은 이날 열린 정례 브리핑에서 "(신용불량자가) 자기 능력으로 빚을 갚을 수 있도록 시간적, 장소적 여유를 제공한다는 정부의 대책이 제대로 이해되지 않은 것"이라며 "빚은 자기 능력으로 갚아야 하며 추가적인 보완책은 없다"고 말했다.
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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