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CEO의 자살 왜?…매순간 의사결정 고독한 무한책임

  • 입력 2004년 3월 21일 17시 42분


엄청난 흑자를 기록한 기업. 이사회 회의장은 축제 분위기다. 그런데 갑자기 회장이 테이블 위로 올라가더니 44층 아래로 몸을 내던진다. 이사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도대체 왜….

1994년 코엔 형제가 감독한 영화 ‘허드서커 대리인’의 한 장면이다. 풍자와 유머로 세태를 한껏 꼬집은 이 영화는 그러나 현실이 됐다.

지난해 8월 정몽헌 현대아산이사회 회장, 지난달 안상영 부산시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얼마 전에는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까지 한강으로 몸을 던졌다.

최고경영자(CEO)의 자살은 국내의 일만은 아니다. 지난해 미국에서는 단돈 11달러로 장사를 시작해 수백만달러의 사업으로 성장시켰던 CEO 하인츠 프레처의 자살이 큰 파문을 일으켰다. 프레처는 어느 날 아침식사를 마친 뒤 목을 매 자살했다.

모두 부러워하는 지위와 재력을 가진 지도층 인사들이 왜 자살하는 것일까. 정신의학자들은 이에 대해 불만과 책임회피의 극단적 표현이면서 동시에 명예회복을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라고 진단한다.

이들은 매순간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며 그에 따른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 일반인에게 이런 과정은 부러움일 수 있지만 당사자에게는 매우 힘겹고 고독한 작업이다.

정신의학자들은 이런 상황이 지도층 인사의 정신질환을 부추길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주변의 이목을 고려해 병원을 자주 드나들 수도 없다. CEO의 질병은 소문만으로도 주가를 출렁일 수 있기 때문.

스트레스는 가중되지만 이를 해소할 만한 마땅한 방법이 없는 것도 CEO가 자살을 택하는 이유다. 평사원처럼 불만을 터뜨릴 수도, 사표를 내던질 수도 없다. 이런 상태에서 평소 경험하지 못했던 모욕감이나 수치심을 느끼게 되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

인제대 백병원 신경정신과 우종민 교수는 “평소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자신만의 방안을 모색하고 정신과를 찾아 상담을 받는 게 만약에 생길지 모르는 비극을 방지하는 가장 좋은 방안”이라고 말했다.

김상훈기자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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