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큰 문제는 많은 사람이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라는 이미지와 ‘우리 민족의 기상을 떨친’ 광개토대왕에 대한 찬양이라는 두 가지 사실간의 모순관계를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중 잣대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유리할땐 “법대로” 불리할땐 말바꿔 ▼
비단 역사해석뿐만이 아니다.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에서 무역협상을 할 때 공산물 관세 문제가 나오면 선진국에 가세해 후진국 관세의 인하를 주장하다가 농산물 보호 문제가 나오면 ‘개발도상국 지위’를 유지하겠다고 한다. 우리 편한 대로 선진국 행세를 했다가 후진국 행세를 하는 ‘박쥐 외교’를 하면서 부끄러워하기는커녕 통상외교를 유연하게 잘 한다고 생각한다.
‘개혁’을 외치는 사람들도 이중 잣대를 들이대기는 마찬가지다. 재벌들에는 지배구조와 회계의 투명성을 높일 것을 주장하지만 그 재벌들을 공격하는 외국 펀드의 지배구조와 투명성에 대해서는 별말 없이 지나간다. 미운 재벌을 혼내주는 외국 펀드가 고마워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이것도 이중 잣대다.
기업들은 어떤가. 노사분규가 일어나면 법대로 엄격히 대처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면서 정치자금 수사를 당하면 정치적 문제이니 ‘선처’를 바란다고 한다. 노사분규나 정치자금 모두 정치성을 띤 문제이니 둘 다 정치적 타협을 바탕으로 풀어야 한다고 주장하면 납득할 수 있지만 자기들에게 유리한 것은 법대로 하고 불리한 것은 정치적 고려를 해달라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개방과 자유화를 외치는 사람들도 예외가 아니다. 이들이 흔히 세계화의 귀감으로 삼는 나라는 싱가포르나 핀란드다. 그러나 이들은 싱가포르의 토지가 국유화되어 있다거나 핀란드의 노조조직률이 80%가 넘는다는, 자기들에게 불리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물론 이중 잣대는 우리만의 현상은 아니다. 미국은 다른 나라의 산업정책을 비난하지만 연구개발비 중 정부 부분의 비중이 다른 어느 나라보다 높다(총 연구개발비의 60∼70%·우리나라와 일본은 20% 이하). 유럽연합 국가들은 후진국에는 자유무역을 설교하면서 자국의 농업은 엄청나게 보호하고 있다.
그러나 이중 잣대로 말하면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가장 큰 이유는 우리나라가 지난 40여년간 워낙 급격한 경제성장을 하다 보니 정신적 발전이 물질적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고 가치관의 혼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1961년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이 82달러였을 때 지금 우리가 근근이 카카오나 팔아 입에 풀칠하는 나라로 여기는 가나의 국민소득은 179달러였다. 40여년 후 우리나라는 1만달러 수준에 달했지만 가나는 350달러에 불과하다. 엄청난 성장이다. 이러다 보니 몸은 컸는데 정신은 따라가지 못하는 사춘기적인 혼란을 겪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춘기적 혼란’ 넘어야 도약 가능▼
이에 더해 1997년 경제위기가 준 정신적 충격이 컸다. 사람으로 말하면 사춘기에 아버지가 실직하고 정든 집에서 쫓겨나는 충격을 겪은 셈이다. 우리의 체제가 부패하고 비효율적이기만 한 것으로 매도되면서 과거는 오직 청산의 대상으로만 여겨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이중 잣대를 동원해서라도 과거를 청산하려는 노력이 시작됐다.
인간이 완벽한 존재가 아닌 이상 어느 정도의 이율배반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더 도약하려면 이중 잣대로 표출되는, 가치관의 혼란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눈금이 다른 자를 가지고 제대로 된 집을 설계할 수는 없지 않은가.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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