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단은 “란싱이 원할 경우 일반협상대상자와 동등한 자격으로 협상을 지속할 수 있다”며 재협상의 여지는 남겼지만 자동차업계에서는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는 분석이 많다. 매각협상이 늦어지면서 1999년 말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가 4년 넘게 채권단의 관리를 받고 있는 쌍용차의 경영정상화와 워크아웃 졸업에도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왜 협상이 결렬됐나?=표면적인 계기는 란싱이 채권단이 요구한 최종입찰제안서 수정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란싱은 15일 채권단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최종입찰제안서를 제출했다. 단일가격을 제시하는 자동차업계의 관행과 달리 현장 실사(實査) 등에 따른 최고 최저가격을 제시했으며 채권단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할 때 약속한 중국 정부의 투자승인 공문도 첨부하지 않은 것.
채권단은 란싱의 최종입찰제안서를 반려하고 30일까지 보완 시정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란싱은 24일 이를 공식적으로 거부했다.
그러나 협상이 결렬된 가장 큰 이유는 란싱이 매각 가격을 낮춘 때문으로 분석된다. 란싱이 제시한 최저가격은 MOU 체결 때 양측이 합의한 인수가격의 85%에도 못 미친다는 것.
이처럼 란싱이 가격을 낮춘 것은 란싱의 경쟁사인 중국 상하이자동차공업집단공사와의 ‘미묘한 관계’가 적잖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국내 자동차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상하이자동차는 “란싱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기 위해 지나치게 높은 가격을 제시했다”고 계속 비판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중국 정부도 두 개의 공사(公社)라는 카드를 이용해 낮은 가격으로 쌍용차를 인수하려는 저의가 있는 것 같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란싱측은 인수가격을 낮춘 것은 쌍용차 노조의 매각 반대로 평택공장에 대한 실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만큼 추가 부실에 대비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물론 채권단과 란싱이 다시 협상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실제로 채권단과 란싱은 24일의 ‘란싱 자격 상실’ 발표가 나오기 직전까지도 협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주채권은행인 조흥은행의 고위 관계자는 “란싱측이 전향적인 태도 변화로 흡족한 인수 조건을 가져올 경우 재협상에 나설 수도 있지만 여러 정황으로 미뤄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말했다.
▽쌍용차 매각, 앞으로 어떻게 되나=채권단은 2차 우선협상대상자로 알려진 상하이자동차와 협상을 벌일지, 공개입찰부터 다시 매각작업을 진행할지에 대해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다만 채권단은 해외매각 작업을 지속해 나간다는 기본 원칙을 고수하되 서두르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조흥은행의 고위 관계자는 “인수제안서를 제출할 당시 상하이자동차가 란싱보다 낮은 가격을 써낸 것은 사실이지만 상하이자동차와 매각협상을 한다면 이 가격에 구애받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현재로서는 재입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쌍용차 인수제안서를 제출한 해외업체는 란싱과 상하이자동차 외에 미국의 제너럴모터스(GM), 프랑스의 르노 등 5, 6개사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나연기자 larosa@donga.com
김창원기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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