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경영]‘돈 그 영혼과 진실’…돈 모아둘수록 손해본다면

  • 입력 2004년 3월 26일 17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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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그 영혼과 진실/버나드 리테어 지음 강남규 옮김/485쪽 2만4000원 참솔

“우리가 모르는 ‘돈’이 있었다.”

누구에게나 귀가 번쩍 뜨이는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어딘가에 숨겨진 돈을 찾는 데 동참할 수만 있다면, 수만 대 1의 청약률이 나오더라도 한나절을 기다려 접수할지 모른다. 그러나 저자가 말하는 ‘우리가 모르는 돈’은 이와 다르다.

저자는 돈이 언어와 마찬가지로 한 사회의 무의식적인 합의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모든 돈이 똑같을 이유는 없다. 국가가 발행하고, 빌려주면 이자가 생기는, 오늘날의 화폐는 돈이 가진 ‘한 부분’의 얼굴일 뿐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오늘날의 경제시스템에 사용되는 돈을 ‘양(陽)’의 돈으로 정의하고 이에 대비되는 ‘음(陰)’의 돈을 찾아 역사 탐험에 나선다.

저자는 10∼12세기의 유럽과 기원전 3000년경∼기원후 2세기의 이집트라는 두 시공간에 주목한다. 저자에 따르면 이 시기의 두 사회는 이례적으로 풍요로웠다. 10∼12세기 유럽인의 체격은 어느 시대보다 장대했으며 당시 런던 여성의 키는 오늘날보다 더 컸다. 황금기 이집트인은 하루 평균 8시간만 노동에 할애했고 많은 휴일을 즐겼다. 기원전 445년 아테네에 기근이 발생하자 이집트인은 곡물을 무상으로 원조했다.

저자는 고대 이집트사회가 ‘장기 투자’를 장려하는 음의 화폐시스템 덕택에 풍요로움을 유지했다고 밝힌다. 이집트 고왕조 시대의 분묘 내부 벽에 농업 생산을 묘사한 벽화. 동아일보 자료사진

무엇이 이 같은 풍요를 낳았을까. ‘우리가 몰랐던 돈’, 즉 ‘음의 돈’이 바로 그 비밀의 열쇠라는 분석이다. 음의 돈은 빌려주고 이자를 받지 않았다. 오히려 금융기관에 보관할 때 ‘유치료’를 물어야 했다. 몇 년마다 구화폐와 신화폐의 교환비율을 정해 일부를 세금으로 거두어들였다. 돈은 모아둘수록 손해였기 때문에 화폐는 원활하게 유통됐고, 사람들은 땅을 개간하거나 농업용구를 마련하는 등 자신의 자산을 최고로 활용해 재화생산을 늘렸다.

‘실제로 그런 시대가 있었을까.’ 이런 의심을 비웃듯 저자의 시각은 한 발 더 나아간다. 두 사회는 문화적으로도 의미 깊은 유사성을 보여준다. 이 시기 고대 이집트에서는 이시스 여신에 대한 숭배가 절정에 다다랐으며, 10∼13세기 유럽에서는 ‘검은 성모상’ 숭배가 유행했다. 두 사회에서 죽음은 금기가 아니었다. 시인들은 죽음을 소리 높여 노래했으며 임종시 참관도 매우 자유스러웠다. 여성의 권리도 존중됐다. 그리스인들은 여성이 남성에게 먼저 사랑을 고백하는 이집트인들을 매우 흥미로워했다.

이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카를 구스타프 융의 ‘원형심리학’을 끌어들인다. ‘위대한 어머니’에 대한 존중이 집단적 심층의식을 이루는 사회에서는 여성 존숭(尊崇)과 존중, 죽음에 대한 금기 해제, 음의 화폐제도 도입이 한꺼번에 진행됐다. 그러나 이런 사회는 그 후 ‘여성에 대한 박해, 죽음을 금기시하는 태도, 이자 부과 등이 통용되는 양의 화폐제도’를 갖는 ‘양(陽)’의 사회로 대치됐다는 설명이다.

성 누가가 그렸다는 전설이 있는 폴란드 체스코토바의 ‘검은 마돈나 초상’. 사진제공 참솔

이 책에서 독자는 저자가 일종의 ‘거대담론’을 꿈꾸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모든 ‘거대한 이야기’가 종종 그렇듯, 경우에 따라서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논증이 꼼꼼하지 않거나, 자신의 설명을 뒷받침하는 증거만 열심히 끌어들이고 있다는 의심을 버리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폐제도 자체가 이성과 합리성보다는 일종의 ‘집단 무의식’에 기초하고 있으며, ‘대안’의 설계가 가능하다는 점을 자연스럽게 제시한 것은 이 책이 가진 중요한 성과로 보인다.

저자는 벨기에 루뱅대 국제금융학과 교수를 지냈으며 1992년 ‘비즈니스위크’지에서 ‘세계 최고의 머니 트레이더’로 선정됐고, 미국 소노마 캘리포니아대에서 원형심리학을 강의하는 등 다채로운 경력을 지녔다.

원제 ‘Mysterium Geld’(2000년)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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