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창신동 창신시장 입구. 10평 남짓한 가게에 18일 새 간판이 내걸렸다. 곱창과 순대볶음을 주 메뉴로 하는 ‘잘 먹고 잘 사는 집’.
이 가게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사장 강학희씨(51)는 서울 청계천변이 삶의 터전이었다. 1978년 1월 10일 중구 을지로6가 평화시장 앞에서 전 재산 20만원을 털어 일명 ‘계란빵’ 장사를 시작했다.
이후 안 팔아본 물건이 없었다는 강씨는 25년을 그곳에서 생활했다.
그러나 지난해 그는 삶의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6월 부인 김경자씨(51)가 갑상샘암 진단을 받았다. 암세포가 다리뼈까지 전이돼 수술은 불가능했고 약물치료를 시작했다.
이해 11월에는 삶의 터전마저 잃었다. 청계천 복원공사로 노점상에 대한 일제 정비가 시작된 것. 망연자실해 한 달간은 술에 찌들어 생활했다.
하지만 부인을 살려야겠다는 일념으로 마음을 고쳐먹고 올해부터 청소부, 세차원, 경비원 등 일자리가 있는 곳은 어디든 찾아다녔다. 하지만 ‘나이가 많다’ ‘경력이 없다’는 등의 이유로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지난달 우연히 TV를 통해 창업지원 프로그램을 보면서 실낱같은 희망이 생겼다. SK텔레콤과 삼성전자가 2억원을 출자해 기획한 ‘대한민국 희망프로젝트’는 아무 조건 없이 5명에게 3000만원씩, 또 다른 5명에게 1000만원씩 창업자금을 지원한다는 내용이었다.
경쟁률 180 대 1. 초조하게 발표를 기다리던 그에게 행운이 찾아들었다. 3000만원의 창업자금과 함께 컨설턴트 윤은기(尹恩基)씨의 도움을 받으며 창업에 성공한 것.
희망프로젝트팀은 “힘든 상황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는 모습이 높은 점수를 얻었다”고 말했다. 강씨는 희망프로젝트의 수혜자 가운데 최고령.
“사회에 진 빚은 죽을 때까지 갚아도 다 갚지 못할 겁니다. 열심히 일해 아내의 건강을 되찾고 나뿐 아니라 창신시장 사람들, 나아가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우리 가게 이름처럼 돼야죠.”
희망프로젝트의 수혜자는 모두 결정됐다. 3명은 이미 창업했고 2명은 준비 중이다. 나머지 5명은 29일 발표된다. 희망프로젝트팀은 이들이 우리 사회의 희망의 씨앗이 되길 바라고 있다.
이재명기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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