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접대’… 기업과 문화 相生의 만남

  • 입력 2004년 4월 2일 18시 01분


서울 세종문화회관 2층 객석에 마련된 ‘메세나 27’. 기업인과 초청인사 등 27명이 함께 공연을 관람하면서 비즈니스를 할 수 있도록 소연회장도 마련돼 있다.     -사진제공 세종문화회관
서울 세종문화회관 2층 객석에 마련된 ‘메세나 27’. 기업인과 초청인사 등 27명이 함께 공연을 관람하면서 비즈니스를 할 수 있도록 소연회장도 마련돼 있다. -사진제공 세종문화회관
지난달 17일 대림산업의 이용구 사장은 해외 거래처인 ‘쿠웨이트 오일컴퍼니’의 아랍 기업인 8명과 서울 종로구 통의동의 한 미술관에서 함께 저녁식사를 하면서 상담(商談)을 했다. 식사 전 ‘재즈사진전’을 관람했고 식사 중에는 색소폰 드럼 베이스로 구성된 ‘임달균 재즈밴드’를 초청해 연주를 들었다. 아랍 기업인들은 “기존 한국 기업의 술 접대와 크게 달랐다”며 만족해했다.

술집이나 골프장을 전전하던 기업의 접대문화가 바뀌고 있다. 클래식 발레 오페라 뮤지컬의 공연 티켓을 선물하고, 미술관에서 기업설명회(IR)나 신차발표회를 갖는 문화마케팅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올해 초 ‘50만원 이상 접대비 실명제’가 실시되면서 ‘문화접대’가 본격화하고 있다.

세종문화회관은 3월 재개관하면서 2층에 문화접대로 활용할 수 있는 ‘메세나 27’이란 별도의 방을 마련했다. 이곳에서는 27명이 한꺼번에 공연을 볼 수 있고 호텔급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메세나 27’은 지난달 가수 패티김 데뷔 45주년 공연 때 486만원(50% 할인 가격)에 처음으로 팔렸다.

‘문화접대’로 선호되는 작품은 ‘빈 필 오케스트라’, 오페라 ‘나비부인’, 볼쇼이발레단의 ‘백조의 호수’ 등 20만∼35만원 상당의 해외공연물. 세종문화회관 홍보실의 김경태 과장은 “특정기업의 문화접대가 이뤄지는 날엔 로비가 고급 사교장으로 바뀐다”고 말했다.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하고 있는 뮤지컬 ‘맘마미아’는 2일에 SK텔레콤이, 15일에는 삼성전자 하우젠이 1회분 2300석 전부를 구입해 ‘○○데이’라는 이름으로 고객 초청행사를 갖는다. 5월에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리는 조용필 콘서트도 우리은행이 VIP고객을 위해 300장의 표를 미리 구입했다.

한국메세나협의회(회장 박성용)는 기업들의 문화접대에 대한 문의가 늘자 2주마다 1번씩 ‘문화접대하기 좋은 공연’을 추천하는 e메일을 171개 회원사들에게 보내주고 있다.

기업들의 문화지원 활성화를 위해 문화접대비는 ‘접대비 총액 50만원 이상 실명제’ 규정에서 제외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공연 티켓은 2장씩 선물하기 마련이어서 고액 티켓이나 접대 인원이 많을 경우 50만원은 쉽게 넘어서기 때문이란 것. 기업들은 그동안 문화공연 티켓 비용을 협찬금이나 광고비 계정에 포함시켜 접대비 규제를 피하는 편법을 쓰기도 했다. 이에 따라 문화관광부는 문화접대비에 한해 ‘접대비 50만원 이상 실명제’ 규정에서 예외로 하는 방안을 국세청과 협의 중이다.

한국메세나협의회측은 “문화접대에 대해서는 50만원 제한 규정을 철폐하고, 아울러 기업이 조세감면을 받을 수 있는 지정기부금의 한도를 순수입의 5%에서 선진국 수준인 10%대로 확대했으면 한다”고 제안했다.

홍승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공연티켓의 가격은 아무리 비싸도 유흥업소에서 쓰는 돈과 다르다”며 “세금을 거둬 국가가 문화를 지원하기보다 기업과 문화가 직접 만날 수 있는 정책을 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