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여섯 살 된 아들을 보면서 더 우울하다. 저 또래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과연 어떤 모습일지 불안을 떨칠 수 없다. 엄혹한 군사정권 시절, 정치적으로는 견디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희망과 믿음을 가졌다. 특히 경제가 그랬다. 하지만 요즘 한국의 미래에 대한 낙관이 점점 줄어든다. 세상 흐름을 잘못 읽고 있어서인가.
우리 사회의 앞날을 걱정하는 사람은 의외로 많다. 어떤 분야에서든 ‘창조적 생산’의 어려움을 경험했다면 더 그렇다. 노무현 정부에 정서적 친밀감을 가진 사람 중에도 국정 운영의 획기적 변화가 없을 때 경제의 재도약이 가능할지 회의하는 모습을 적잖게 발견한다.
한국호(號)의 진로를 우려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하지만 한 가지를 꼽으라면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실종과 시대역행적 이념 과잉이다.
사회의 발전적 업그레이드보다는 부정과 파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어두운 열정’이 너무 넘치고 있다. 다른 나라들이 팔짱을 끼고 있다면 또 모른다. 하지만 세상은 빠른 속도로 앞날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을 무시하거나 왜곡도 서슴지 않는 권력 주변 ‘박수부대’의 행태는 이미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 성실한 삶 대신 한국 사회가 눈물과 땀 속에서 이뤄 놓은 각 부문의 성취를 침소봉대하면서 매도한 공만으로 벼락출세했거나 주목받는 ‘길 잘못 든 지식인’을 볼 때 씁쓸하다. 그러면서도 우리 사회의 ‘개혁과 선(善)’을 대표하는 양 행세하는 모습에서는 분노를 넘어 인간적 연민마저 느낀다. 그들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기억하는 사람이 아직 많은데.
세상을 보는 눈이 다를 수는 있다. 하지만 삶과 일에 대한 최소한의 진지함과 치열함, 자기 성찰과 겸허함이 없는 질주(疾走)와 독선은 불길하다. ‘뒤틀림’도 정도가 있어야 한다.
동아일보 경제부가 창간 84주년 특집기획으로 연재한 ‘GDP 1조달러 국가로’ 시리즈의 핵심 키워드는 ‘실사구시’였다. 나눠먹기와 의식 과잉, 편 가르기와 ‘코드’에 집착하면 쇠락의 길이 기다린다. 정부 기업 정치권 언론 등 사회 각 부문에서 국가 경쟁력을 키우는 노력에 박차를 가할 때 사회적 약자의 눈물을 닦아줄 여유도 더 생긴다.
오늘 한국에서 ‘GDP 1조달러 국가’를 가로막는 적(敵)은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뼈를 깎는 생산적 노력 없이 공허한 구호만으로 국민적 풍요와 자유가 그냥 생겨난다는 미망(迷妄)과 착각을 계속 가져도 되는 것일까.
권순활 경제부차장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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