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사회에 책임을 진다는 것은 사회가 요구하는 법적인 기대 수준을 넘어 인재와 환경, 기업의 이해관계자에게 더 많은 투자를 한다는 것이다.”
2001년 7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채택한 ‘그린 페이퍼’의 한 대목이다. 기업은 이제 단지 이익추구 집단이 아니라 사회의 건강한 일원으로서 도덕성을 갖추고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하는 ‘기업 시민(Corporate Citizen)’의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이른바 ‘윤리경영’이 글로벌 비즈니스의 핵심 경쟁력으로 떠오른 것이다.
이 책은 ‘윤리경영’은 무엇이며 어떻게 이를 실현할 수 있는지를 국내외 현장취재를 통해 집대성한 것이다. 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21명이 2001년 4개월과 2003년 내내 취재한 60회 분량의 기사를 보완해 재구성한 것.
윤리경영은 무엇인가. 저자들은 ‘주주(shareholder)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며 기업윤리를 경영전략으로 강조하는 미국식 모델과 기업 노동자 투자자 정부 사회단체 등 기업의 모든 이해관계자(stakeholder)를 동등하게 중시하면서 기업의 자발적 책임감을 강조하는 유럽식 모델의 차이’를 사전적으로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실제로 국내외 기업들이 ‘윤리’라는 모호한 기준을 어떻게 표준화하고 실천하는지 현장을 보여준다.
신세계백화점에서는 식중독이 많이 발생하는 여름철엔 단무지와 계란이 든 김밥을 팔지 않는다. “매출이 줄더라도 고객의 안전을 위협하는 제품은 판매하지 않겠다”는 스위스 식품업체 네슬레의 윤리경영을 원용해 내린 결정이다.
기업의 일원으로서 어느만큼의 윤리적 엄정함이 필요한 걸까. 존슨앤드존슨사는 ‘레드 페이스 테스트(Red Face Test)’라는 소박하면서도 실질적인 기준을 제시한다. “자신이 내린 결정이나 행동을 자기 가족에게 얼굴 붉히지 않고 설명할 수 있을 만큼 윤리적이었는지 자문하라.”
저자들이 책 후반부에서 관심을 기울인 주제는 ‘기업지배구조(corporate governance)’다. 지배구조란 ‘지분만큼 지배하고 권한만큼 책임지는’ 주식회사의 본질을 구현하려는 노력. 이 지배구조가 재벌의 선단식 경영 등으로 왜곡됐기 때문에 한국은 ‘코리아 디스카운트(discount)’라는 기업 저평가의 수모를 겪게 됐다. 기업지배구조 개선이라는 하드웨어의 변화가 동반되지 않고는 ‘윤리경영’은 공염불이 되고 말 수 있다.
왜 최근 신문 경제면에 ‘지주회사(持株會社)’라는 단어가 자주 언급되며 기업의 사외이사가 계속 늘고 있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경제문외한들도 읽어낼 수 있을 만큼 쉽게 서술됐다. 윤리경영의 큰 밑그림이 현장사례를 통해 생생하게 정리됐다.
정은령기자 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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