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투신사 펀드매니저들이 털어 놓는 고민 중의 하나다. 사고 싶어도 못 사는 경우가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는 얘기다. 얼마 전까지 특정 가격대에 주문을 내놓고 기다리면 살 수 있었는데 최근엔 무작정 기다려서는 물건을 놓친다는 설명이다.
KTB자산운용 장인환 사장은 “최근 사상 최고치 경신 행진을 하고 있는 삼성전자의 경우 거래량이 줄면서 주가가 상승하고 있다”며 “이는 외국 기관들이 일단 사면 상당 기간 팔지 않아 거래가 줄어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만 그런 게 아니다. 외국인들의 집중 매수대상이 되고 있는 시가총액 상위종목군들은 대부분 품귀(品貴)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주가거품 등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사고 싶어도 못 산다=증권거래소에 따르면 시가총액 상위 20개 종목의 유통주식 비중은 12일 기준으로 평균 25.51%로 2002년 말(32.97%)에 비해 7.46%포인트 감소했다. 유통주식 비중은 전체 상장주식에서 외국인 보유지분과 최대주주 지분(특수관계인 포함)을 빼서 산출한 것이다.
여기서 5% 이상 보유한 기관투자가들의 지분마저 제외하면 유통주식 비중은 20%대 초반으로 떨어진다는 분석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유통주식 비중은 2002년 말 31.87%에서 12일 현재 25.56%로 감소했다. 기관투자가의 지분을 제외하면 19%대로 줄어든다. 삼성전자에 대한 외국인 보유 비중이 1년3개월여 만에 30%포인트 이상 급증하면서 최근 60%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이 밖에 포스코 SK텔레콤 현대자동차 LG전자 신세계 기아자동차 KT 등도 외국인 매집과 경영권 안정을 위한 대주주 지분매집 등이 겹치면서 유통주식이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12일 현재 이들의 유통주식 비중은 10∼20%대에 그치고 있다.
▽우려되는 부작용들=최근 거래량이 감소하는 가운데 종합주가지수가 급등락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소량의 매수주문에도 주가가 급등하고 소량의 매물에도 주가는 많이 빠진다는 것.
한화증권 홍춘욱 투자전략팀장은 “대형 우량주의 ‘씨’가 고갈되면서 가격변동성이 매우 심해졌다”며 “우량주 물량이 대거 퇴장된 상황에선 소량의 주문만으로도 주가는 급등락한다”고 말했다.
‘주가 거품’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태평양은 12일 장중 한때 사상 최고치인 21만6000원까지 상승했으나 거래량은 고작 1만6000여주. 삼성전자도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면서도 하루 거래량은 평균 30만∼50만주 안팎에 그치고 있다. ‘거래량이 늘면서 주가가 상승하는’ 전통적인 주가상승 패턴과는 상당히 다른 양상이다.
장인환 사장은 “유통물량이 적은 가운데 매집경쟁이 일어날 경우 주가가 기업의 내재가치 이상으로 급등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외국인들의 매집에 의존해 유통물량이 잠식된 점도 신경 쓰이는 부분. 가격이 비싸 주저하던 국내 투자자들이 뒤늦게 외국인들의 물량을 떠안을 경우 주가 급락에 따른 피해를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
이강운기자 kwoon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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