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초에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경제전망을 수정 발표했다. 수정작업의 계기는 해외 부문에 있었다. 수출은 증가세가 크게 높아진 반면 수입 증가세는 다소 주춤해 연간 경상수지 흑자가 처음 예상치의 곱절이 넘는 166억달러로 예상돼 경제성장률을 5.5%로 올려 잡았다. 반면 내수 부문은 설비투자와 민간소비의 둔화가 깊어져 부문간 명암이 짙어질 것이고, 원유 등 수입원자재 가격 동향을 고려해 물가오름세는 3%대 이상으로 높여 잡았다. 수출과 연계된 대기업 부문과 달리 내수용 중소기업 부문은 매출 부진과 인력난의 이중고로 몸살을 앓고 있다.
안개가 걷힌 부분은 경제운용의 책임 소재다. 집권 후 14개월 동안 정부는 경제의 어려움을 지난 정부의 정책 과오(신용불량자 양산 등)와 여소야대 국회의 발목잡기에 책임을 돌릴 수 있었다. 이제는 핑계 댈 구석이 없어졌다.
그러나 경제주체들의 시야에는 아직도 불투명한 부분이 남아 있다. 우선 열린우리당의 인적구성 스펙트럼이 주목된다. 총선 직전 여권의 연예계 인사 두 사람의 말처럼 ‘잡탕’이라 부를 만했다. 그러나 바로 그 스펙트럼의 넓은 폭 덕분에 열린우리당이 승리해 모처럼 국회를 여권 주도로 운영할 수 있게 됐다. 만일 대통령이 최근 발언한 ‘화해와 타협’의 정치 경제가 단순히 수사학적 표현이 아니라면 ‘잡탕’이나 ‘비빔밥’이야말로 다양한 계층의 국민을 아울러서 골고루 경제적 후생을 늘리는 건강식단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이념적으로 순수한 메뉴로 편식시키면 국민을 대량 영양실조 증후군으로 몰아가기 십상이다. 그래서 앞으로 그 넓은 스펙트럼에서 무게중심을 어디에 둘 것인가에 이목이 집중된다. 6월 초 17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예상되는 개각 때부터 정부는 시장친화적 면목을 드러내 기업계의 불안을 해소해 줘야 할 것이다.
초미의 관심은 제도권 진출에 성공한 노동계 출신 의원들의 행보에 쏠린다. 이들의 지휘에 따라 올해 춘투현장에서 삭발, 붉은 머리띠, 불법 파업시위가 사라질 것인가, 아니면 비정규직 문제로 사생결단을 벌일 것인가? 노동부 장관도 지적했듯이 비정규직 문제는 애초에 강성노조 때문에 불거졌고, 노조의 과도한 임금·후생 인상 요구에 사용자측이 떳떳하게 맞대응하지 못해 만든 불가피한 탈출구였다. 그렇다면 사용자는 이제 떳떳하게 맞설 만큼 자기정화 노력을 통해 대응자세를 갖추었는가? 그리고 정부는 기업에 조속한 분규 타결을 위해 부당한 압력을 가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노동시장의 경직성과 노사관계의 불안이 해소된다면 기업계 불안감의 태반은 풀리는 셈이다.
한국 경제의 앞길은 첩첩산중이다. 중국 등 경쟁국들이 뒷머리 가까이 뜨거운 입김을 불며 점점 거리를 좁혀오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이후에도 세계 도처에 무역마찰이 빈발하고 있다. 특히 한국의 수출시장 문턱이 높아가고 있다. 엊그제 일본 정부는 후지쓰의 요청을 받아들여 삼성 플라스마 디스플레이 패널(PDP) 제품에 대해 전격적으로 수입 중단 조치를 내렸다. 한일간 자유무역협정(FTA)은커녕 전면적 통상마찰로 불이 번져갈 조짐인가?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주종 수출상품들이 모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내달에 쌀시장 개방 재협상이 열리게 돼 있어 농민 설득과 농업 구조개편이 난감한 과제로 다가오고 있다.
주어진 국내 가용 자원의 유한성을 생각한다면 선택은 단 하나, 세계시장과 연결된 시장 경제를 지향하는 것이다. 성장과 분배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상호보완의 문제다. 성장보다 확실한 분배 개선 방안은 없다. 이념보다 실용주의로 무장해야 나라 경제가 산다. 올해 거시경제지표는 좋게 전망된다. 그러나 자칫 장기적 성장잠재력 잠식이 우려된다.
pjkim@ccs.sogang.ac.kr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