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현재 10개 신규 회원국을 포함한 EU 25개국에 대한 한국의 수출은 270억달러, 수입은 198억달러로 전체 수출과 수입 가운데 13.9%와 11.1%를 각각 차지했다.
▽시장을 선점하라=체코의 수도 프라하에서는 시내를 달리는 전차에서 삼성전자 휴대전화 광고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삼성전자는 체코의 EU 편입에 대비해 올 초부터 광고를 크게 늘렸다. 슬로베니아를 비롯해 동유럽 지역에서도 대대적으로 광고할 계획이다.
LG전자는 지난해 10월 프라하에 판매법인을 설립했다. 최근에는 체코 영부인까지 초청해 자사(自社)의 휴대전화를 소개하는 행사를 가졌다.
대기업의 마케팅 투자는 이들 지역의 밝은 경제성장 전망과 시장 선점전략에 따른 것.
대외경제연구원(KIEP) 김박수 선임연구위원은 “10개 신규 회원국이 EU로부터 받는 예산지원으로 나라별로 1.7∼3.2%의 추가 성장이 가능해져 연 4.1∼6.1%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EU 집행위에 따르면 EU 전체의 잠재성장률도 연 2.5%에서 4%로 높아질 전망이다.
▽생산설비 확충 러시=삼성전자는 1990년부터 컬러TV와 휴대전화를 생산하던 스페인 공장의 생산시설을 슬로바키아로 옮기기로 했다.
폴란드에서 첨단 디지털TV를 생산하고 있는 대우일렉트로닉스는 현지공장의 올해 매출 목표를 작년보다 30% 증가한 7000만달러로 정했다.
LG전자도 이미 폴란드 무와바에 있던 브라운관TV 공장을 확장해 디지털TV 생산기지로 탈바꿈시켰다.
기아차는 7일 서유럽 진출의 전진 기지가 될 슬로바키아 공장 기공식을 가졌다. 현대모비스를 비롯한 부품업체들도 동반 진출한다.
SK케미칼도 내년 3월 가동을 목표로 폴란드에 페트병 원료공장을 짓고 있다. 효성과 한국타이어도 공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삼성전자 구주총괄 김영조 부사장은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동유럽을 생산거점으로, 서유럽은 마케팅과 연구개발 거점으로 삼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유럽시장 확대의 계기로=10개 신규 회원국은 평균 관세율을 3.6%포인트가량 낮춰 EU 평균인 6.3% 수준에 맞출 계획이다. 이에 따라 EU 기업들과 경쟁하는 한국기업은 예전보다 높은 가격경쟁력을 갖추게 된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관세가 인하되는 대표적 품목은 타이어와 냉장고, 굴착기, 세탁기, 진공청소기, 전자레인지, 승용차 등이다. 한 예로 기아차는 EU 확대로 관세가 17.1%에서 10%로 낮아짐에 따라 가격 면에서 경쟁력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통관 절차를 비롯한 각종 제도와 규격 등이 통일되기 때문에 수출 비용도 점차 감소할 전망이다. 25개국 가운데 한 곳에만 진출해도 전체 EU로 판매할 수 있게 된다.
10개 신규 회원국이 정부 조달시장을 개방하는 것도 기회다. KOTRA에 따르면 이들 10개국이 올해 지역개발에 투입하는 자금만 해도 117억8000만유로에 달한다.
KOTRA 엄성필 해외조사팀장은 “신규 회원국들이 EU 지원금으로 교통과 환경에 대한 투자를 대폭 늘릴 전망”이라면서 “5월부터 입찰 참가를 제한하는 이른바 원산지 요건이 없어져 한국기업도 참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EU 확대는 기본적으로 지역주의의 확산을 의미하기 때문에 역내 교역의 증가로 역외 국가에 불리한 측면도 적지 않다.
일부 품목은 오히려 관세율이 높아진다. 헝가리의 경우 현재 캠코더의 관세율이 10%이지만 14%로 높아지게 된다.
수입규제 조치도 기존 15개국에서 25개국으로 확대 적용된다. 3월 말 현재 D램 반도체(하이닉스반도체) 등 10개 한국 품목이 반덤핑이나 상계관세 형태로 수입규제를 받고 있다.
10개 신규 회원국은 기존 EU 회원국이 개발도상국에 적용하던 일반특혜관세(GSP) 제도를 자동으로 도입하게 된다. 이 혜택을 더 이상 받을 수 없는 한국(1998년 졸업)으로서는 개도국과의 수출 경쟁에서 불리해진다.
무역협회 이종웅 통상지원팀 부장은 “이번 회원국 확대를 계기로 미국이나 일본 중국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한 대(對)EU 수출을 늘려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국가 및 품목별로 관세를 꼼꼼하게 비교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허진석기자 jameshuh@donga.com
정위용기자 viyonz@donga.com
■신규 가입 10국 공략법
“소득증가 따른 ‘모방 소비’ 잡아라”
“폴란드 바이어에게는 제조업체라는 점을 강조해라. 헝가리에서는 한국산 품질이 중국산보다 낫다는 것을 애써 강조해야 한다. 에스토니아 사람들은 단도직입적으로 상담에 돌입하는 것을 선호한다.”
5월 1일 유럽연합(EU)에 가입하는 10개 신규 회원국을 효율적으로 공략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KOTRA와 한국무역협회는 최근 현지 기업인의 의견을 토대로 ‘EU 신규 가입국 공략법’에 대해 소개했다.
▽관세인하 품목에 주목하라=종합상사인 대우인터내셔널은 관세율이 인하되는 품목 가운데 일부를 올해 전략상품으로 지정해 바이어를 적극 발굴하고 있다. 이미 철강을 비롯한 일부 품목 바이어들이 기존 거래처를 바꾸고 시험 거래에 나서게 하는 등 성과를 올리고 있다.
▽동유럽의 ‘모방 소비’ 이용=신규 회원국의 국민소득이 점차 증가하면서 소비패턴이 서유럽을 닮아간다는 것이 현지 진출기업의 분석이다. 이 때문에 서유럽에서 판매에 성공한 제품일수록 신규 회원국에서 성공할 확률이 높다. 브랜드 인지도가 높은 제품이나 환경친화적인 제품, 레크리에이션 용품 등이 대표적인 사례.
▽수익성 높은 틈새시장=범용 제품의 가격을 낮추는 방식으로 시장에 접근하는 경우가 많지만 새 시장 개척에는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것이 훨씬 수월하고 수익도 높다. 삼성정밀화학은 건축용으로 쓰이는 시멘트 접착제를 개발해 유럽시장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제일모직은 욕실용 인조대리석으로 수요를 창출했다.
▽서유럽 본사를 공략=자동차 부품을 팔기 위해 폴란드 피아트 공장 관계자를 직접 접촉하는 것은 효율적이지 못하다. 특히 첨단산업과 유통 분야는 서유럽 기업의 영향력이 크다. 체코의 한국인 무역회사 코맥스인터내셔널은 현지에서 주방용품과 가전제품을 팔지만 바이어는 독일과 영국에 있다.
무역협회 김무한 통상지원팀장은 “외부조달 기지로 신규 회원국 주변의 발칸반도를 활용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허진석기자 jameshuh@donga.com
■전문가 조언
“유럽연합(EU) 가입 이후 6∼8년에 외국기업의 진출이 가장 활발했다. 지금이라도 늦지는 않았다.”
한국무역협회 무역연구소 심남섭 연구위원은 1990년대 초반부터 얘기돼 온 EU 확대에 지금 대응하는 것이 늦은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1973년 EU에 가입한 아일랜드와 영국, 1986년에 가입한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경우 모두 가입 후 6∼8년에 외국인 투자가 가장 많이 증가했다는 것.
EU 확대 이전에 사전 조치가 많이 시행되지만 기업들은 실제 제도와 정책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보고 진출하는 사례가 많았다고 심 연구위원은 분석했다.
기업이 투자를 결정할 때는 지역별로 생산품목이 재편되는 상황을 잘 살피고 진출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예를 들면 의류의 경우 인건비가 더 싼 불가리아나 루마니아 등으로 이미 대부분의 생산시설이 옮겨간 상태라는 것.
심 연구위원은 “인건비 등 생산원가를 낮추려는 이유만으로 진출하는 것에 대해선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폴란드의 경우 임금이 이미 많이 올라 외국기업의 진출이 늘지 않고 있다는 것. 유럽시장을 노리면서도 싼 임금을 찾는다면 인도를 거쳐 우회적으로 진출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김박수 선임연구위원은 “EU의 한국에 대한 경제적 비중을 고려할 때 기존 투자로는 미흡하다”며 “중국에 대한 수출 의존도를 줄이고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광역 유럽경제권에 대한 정부의 종합적인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김 연구위원은 “장기적으로 서유럽은 소비시장, 동유럽은 생산기지, 러시아를 비롯한 인근 국가들은 자원 공급기지로 부상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허진석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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