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한 대가 겨우 들어갈 마을 입구엔 ‘90년 부녀지도 전국최우수마을’이라는 팻말과 함께 이보다 10배나 큰 ‘미군기지 확장 막아내고 고향을 지킵시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외지인을 맞았다.
용산 미군기지와 전방 미 2사단의 평택 이전 계획으로 지난해 평택 내 험프리기지와 송탄 미공군(K-55)기지의 확장이 시작된 뒤 내걸린 것들이다.
화창한 토요일 낮 모처럼 열린 경로잔치 덕분에 마을에는 수개월간 사라졌던 노랫소리와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하지만 미군기지 확장 이야기를 꺼내자 주민들의 표정은 일순간에 굳어졌다.
정부가 지난해 험프리기지 주변의 팽성읍 대추리 25만평, 송탄공군기지 주변의 서탄면 금각리 등 5개 마을 40만평을 올해 중 매입하겠다고 공고한 뒤 대추리 주민들은 ‘마을을 떠나야 한다’는 걱정에 휩싸여왔다.
잔치가 끝난 뒤 주민들과 둘러본 농토에는 기지확장 반대 깃발과 서울 시민단체 회원들이 만들어줬다는 탱크, 헬기 모양의 조형물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대추리 김지태 이장(44)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실제로 주민들의 완강한 반발 때문에 5개월간 실시된 국방부의 토지 매입은 대상 면적의 2.68%(1만7450평)에 그치고 있다.
문제는 평당 5만9000∼7만7000원의 정부 토지보상가가 낮아 대추리와 서탄면 주민들이 평택 내 다른 농토를 살 수 없다는 것. 경기도가 지난해 6월 500만평 규모의 ‘평택 국제평화신도시 계획’을 발표한 뒤 주변 농토 가격은 10만∼15만원 수준으로 올랐다.
국방부의 의뢰를 받아 토지매입에 나선 한국토지공사(대추리 담당)와 한국감정원(서탄면 담당)은 매입대상지역에 토지를 갖고 있지만 실제론 다른 곳에 살고 있는 부재지주(不在地主)들을 설득하고 있다. 매입대상 토지의 지주 490명 중 316명(64.5%)이 부재지주라서 정부는 토지매입이 점차 빨라질 것으로 기대하는 눈치다.
그러나 서탄면 황구지리 신용조 이장(38)은 “정부가 자세한 기지확장 계획을 숨긴 채 은밀히 부재지주들을 설득하는 것은 초기에만 효과를 거둘 뿐 결국 끝까지 저항하는 주민과 미군기지 확장을 반대하는 평택시민들의 반대에 부딪힐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역 대책위원회 주민들과 서울의 각종 시민단체 회원 등 3000여명은 내달 29, 30일 평택시내에서 기지확장에 반대하는 체육문화활동 및 가두집회를 준비하고 있다.
평택시 도심에서 만난 시민들은 ‘평택 미군기지 확장이 부안의 핵폐기장 사태처럼 커질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부분 손을 가로저었다. 시의회의 한 의원은 “시민들이 환경 및 교육적인 이유로 기지확장을 반대하고 있지만 평택발전을 위한 획기적 방안이 마련된다면 받아들일 수 있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하지만 17대 총선에서 평택갑(송탄공군기지 지역), 평택을(험프리기지 지역)에 각각 당선된 열린우리당 우제항 정장선 후보가 모두 “사령부인 용산기지는 받아들이되 전투부대인 2사단은 반대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시민들은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잘못 알고 있었다.
이에 대해 국방부 관계자는 “용산기지와 2사단을 평택으로 이전한다는 것이 한미 간의 약속”이라며 “이러한 사실을 이미 국방부를 방문했던 평택시의원들에 설명했다”고 밝혔다.
평택=최호원기자 besti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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