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에서는 정부와 금융회사들이 신용불량자를 줄이기 위해 여러 대책을 내놓았음에도 이처럼 신용불량자 수가 늘어난 원인을 채무자들의 모럴해저드(도덕적해이) 때문으로 보고 있다. 지난달 개인 신용불량자 구제를 위해 배드뱅크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스스로 신용불량자가 되기를 자처하는 채무자가 늘고 있다는 지적이다.
▽개인 신용불량자 5개월 만에 급증=29일 전국은행연합회에 따르면 3월말 현재 개인 신용불량자 수는 세금체납자 및 법원 채무불이행자(15만190명)를 포함해 391만8507명으로 전월(382만5269명)보다 2.4%(9만3238명) 증가했다.
신용불량자 증가율이 지난해 10월(2.69%) 이후 4개월 연속 1%대를 유지해왔던 것을 감안하면 5개월 만에 급증세로 반전된 것이다.(표1 참조)
특히 신용카드 관련 개인 신용불량자는 2월말 250만6742명에서 지난달 259만1370명으로 3.38%(8만4628명)가 늘어 전체 신용불량자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
업권별로는 신용카드사의 신용불량자수가 지난달 9만6860명(전월 대비 5.09%)으로 가장 많이 늘었고 △보증보험회사 3만2197명(3.23%) △상호저축은행 2만6659명(4.00%) △할부금융회사 2만2418명(2.89%) 등의 순이었다.
성병수(成秉洙) 교보증권 애널리스트는 "전반적으로 내수회복이 계속 지연되고 있기 때문에 잠재 신용불량자들이 계속 편입되는 과도기적인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면서 "3·4분기 말 정도는 돼야 내수경기가 회복세에 들어서면서 신용불량자 수도 가시적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용불량자 왜 크게 늘었나=H상호저축은행 임모 채권관리본부장은 "3월 들어 배드뱅크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채권 회수율이 40% 가량 떨어졌다"면서 "채권추심을 위해 채무자에게 연락하면 '배드뱅크 서비스를 받겠다'는 응답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배드뱅크 신청 기준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들도 정부가 조만간 새로운 대책을 내놓을 것이라는 일종의 '학습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저축은행 관계자는 "올 초부터 원금의 10%를 선납하는 조건으로 원금 일부 탕감, 금리 인하 등 채무재조정 프로그램을 실시해왔지만 원금의 3%만 갚아도 되는 배드뱅크 논의가 나온 뒤부터는 신청자가 거의 없어졌다"고 전했다.
J은행 신용관리부 담당자는 "특히 올 하반기부터 시행예정인 개인채무회생법은 사채까지 탕감해주는 과감한 내용을 담고 있어 이를 기다리는 사람도 상당수 있는 것 같다"면서 "4월 이후에도 연체율이 좀처럼 줄어들 것 같지 않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금융계 일각에서는 지난달 신용불량자가 급증세로 돌아선 것은 신용카드사들이 대환대출 전환 심사를 강화한 데 따른 '반짝 증가'라는 지적도 있다.
금융감독원이 조만간 신용카드사의 안정성 기준인 '총여신 대비 1개월 이하 연체율'에 대환대출을 포함시킬 방침이어서 신용카드사로서는 대환대출을 해줄 유인이 없어졌다는 것.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지난달 개인신용불량자 급증은 카드사들이 재무제표를 좋게 만들기 위해 채권추심을 강화하고 대환대출 조건도 까다롭게 했기 때문"이라며 "신용불량자 증가율은 다음달부터 완화 추세로 다시 돌아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창원기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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