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지난 1998년 11월에는 분단 반세기만에 처음으로 금강산 관광사업, 1999년 9월에는 남북통일 농구대회, 2003년 2월에는 금강산 육로관광, 같은 해 6월에는 개성공단 착공식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내는 등 다양한 남북경협사업을 통해 남북관계 개선에 크게 기여했다.
정 회장의 대북사업관은 부친인 고 정 주영 명예회장의 큰 뜻과 맥을 같이 한다. 故 정 주영 명예회장은 해마다 보릿고개를 넘기가 어렵고 외화가 턱없이 부족하던 1960년대부터 경부고속도로 건설, 건설사업의 해외진출, 자동차사업, 조선사업, 해운사업 등 당시로서는 아무도 감히 손대지 못하던 사업을 일으켜 국가경제 발전을 위한 기간산업을 세우고 귀중한 외화를 벌어들여 한국경제가 한 단계 도약하는데 크게 이바지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정점으로 한국은 국가 위상이나 경제에서 또 한 단계의 도약을 위해 북방진출이 필요한 상황이었고, 또한 북한과의 관계개선과 경제협력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 회장은 지난 98년 2월 북경에서 송 호경 아태부위원장을 만나 89년 이후 중단상태에 있던 금강산관광사업을 북측에 제안하고, 실무단을 북한에 보내는 등 북한을 협상테이블로 이끌어 내는데 성공했다.
이후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고 정 주영 명예회장의 소 떼 방북이 이루어지고, 그해 11월 18일 역사적인 금강산 관광선의 첫 뱃고동이 울렸다. 특히 정 회장은 한반도의 평화통일 분위기를 정착시키고 남북협력 및 화해를 위해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을 적극 주선하는 등 남북관계 개선에 획기적인 변화를 이끌어냈다.
정 회장은 이후 지난 1998년 10월, 1999년 9월, 2000년 6월, 2000년 8월, 2000년 9월 등 김 정일 국방위원장을 총 5차례 만나면서 금강산관광사업, 개성공단사업, 류경 정주영체육관 사업, 철도·통신 등 굵직굵직한 남북경협사업을 추진해왔으며, 그 후에도 수십 차례 북경, 금강산, 평양, 개성 등을 오가면서 북측과 남북경협사업에 혼신의 힘을 다했다. 최근 2003년 7월에는 금강산관광사업, 개성공단사업 등 다양한 남북경협사업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미국, 일본 등에서 투자유치 활동을 적극 펼친바 있다.
특히 정 몽헌 회장은 2002년 11월 북측으로부터 금강산 및 개성 지역에 대한 50년간 토지 이용증을 확보하고 이어 북한으로 하여금 금강산 및 개성 동서 양대 특구 지정과 함께 특구법을 제정케 하여, 남북경협사업 활성화를 위한 국제적, 법적· 제도적 기반을 마련케 하는데 핵심역할을 수행했다.
정 회장의 이런 노력은 구체적 결실을 맺어 2002년 9월 남북을 잇는 철도 및 도로가 연결되고 2003년 2월에는 우리 민족의 염원인 금강산 육로관광이 이루어졌다. 또 같은 해 6월에는 실질적인 경제 파급효과가 기대되는 개성공단 착공식이 거행되고 최근에는 남북 당국이 남북경협활성화 차원에서 4대 경협 합의서를 발효시키는데 까지 이르렀다.
이처럼 정 몽헌 회장은 부친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유지를 받들어 남북경협사업이 남북관계 개선은 물론 남북 평화, 통일의 초석을 다질 수 있다는 역사적 사명감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사업적인 면에서도 21세기 무한경쟁 시대를 맞아 다양한 남북경협사업이 남북 모두에게 경제적으로 큰 도움이 된다는 판단 아래 사업을 저돌적으로 추진했다.
대북사업 외에도 정 몽헌 회장은 세계 전자산업계에 유명한 일화를 남겼다. 정 회장은 현대의 중후 장대한 산업구조를 첨단사업으로 전환시키는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정 회장은 1980년대 초 전자산업 분야에 뛰어들어 주요 경영전략을 진두지휘하면서 경기도 이천의 불모지에 현 하이닉스 반도체를 설립했다. 현대가 반도체를 시작할 때 일본 전자업체의 한 회장은 "건설과 중공업에 익숙한 현대지만 이 사업에서는 생전에 흑자는 못 볼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지만 정 몽헌 회장(당시 사장)은 취임이후 5년만인 1989년 첫 흑자를 기록해 업계를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또한 지난 1981년 현대상선 사장에 취임한 정 회장은 현대상선을 국내 최대의 운송기업으로 성장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정 회장의 사장 재임기간인 81년부터 88년까지 약 8년간은 현대상선이 단시일 내에 국내 최대 종합해운업기업으로 급성장한 도약기였다. 해운업계가 불황에 빠져 있던 80년대에 정 회장은 "불황기에 선박을 건조해 호황기에 대비한다"는 전략으로 투자를 더욱 확대하고 유조선, 벌크선, LNG 수송선 등으로 사업 다각화를 꾀해 흑자경영의 기반을 마련했다.
연세대를 졸업하고 미국 페어리 디킨슨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취득한 정 회장은 국내외 걸친 다양한 기업경영 경험과 많은 해외 활동으로 글로벌 기업 환경의 전형적인 경영자상을 보여 주었다.
정 회장은 직원들에게 '자율경영'을 늘 강조했다. 인간의 능력은 개발하기 나름이어서 경영자는 직원들이 자신감을 갖도록 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권한을 부여하되 책임감 또한 강조했다. 오너의 일방적 지시는 회사를 무기력하게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정 몽헌 회장은 소박하고 검소하며, 상하 직원들과 격의 없이 토론을하기를 즐겨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직원들 및 바이어들과 식사할 때 밥 먹는 것도 잊을 만큼 토론에 열중한 적도 있다. 또 정 회장은 보는 스포츠 보다 같이 뛰는 것을 좋아하는 진정한 스포츠맨이다. 스키와 골프를 좋아하던 정 회장은 91년 신입사원 단합대회에서 직원들과의 씨름 도중 인대를 다친 이후 스키보다는 수영과 골프를 즐겨했다.
정 회장은 선친인 고 정 주영 명예회장과 성격이 비슷하다는 평을 많을 들었는데 그 검소함도 그대로 물려받았다. 현대전자(현 하이닉스 반도체) 적선동 사옥시절 낡은 카페트를 교체하려는 총무부 직원들에게 "낡아도 쓸 수 있을 때까지 써야지 무슨 새 것이냐"며 나무라기도 했다. 헌 와이셔츠나 구두도 그냥 버리는 일이 없었다.
<현대아산 홍보실 제공> 연국희기자 ykookh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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