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헌은 누구인가

  • 입력 2004년 5월 7일 11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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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현대건설에 입사한 정 몽헌 회장은 1996년 현대그룹 부회장, 1998년 현대그룹 공동회장, 2000년 현대 경영자협의회 회장 및 같은 해 6월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 등 약 30년간 현대의 주요 사업 최고 경영자를 역임하면서 전자, 상선, 무역, 건설, 대북사업 등에서 뛰어난 경영능력을 발휘했다.

특히 지난 1998년 11월에는 분단 반세기만에 처음으로 금강산 관광사업, 1999년 9월에는 남북통일 농구대회, 2003년 2월에는 금강산 육로관광, 같은 해 6월에는 개성공단 착공식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내는 등 다양한 남북경협사업을 통해 남북관계 개선에 크게 기여했다.

정 회장의 대북사업관은 부친인 고 정 주영 명예회장의 큰 뜻과 맥을 같이 한다. 故 정 주영 명예회장은 해마다 보릿고개를 넘기가 어렵고 외화가 턱없이 부족하던 1960년대부터 경부고속도로 건설, 건설사업의 해외진출, 자동차사업, 조선사업, 해운사업 등 당시로서는 아무도 감히 손대지 못하던 사업을 일으켜 국가경제 발전을 위한 기간산업을 세우고 귀중한 외화를 벌어들여 한국경제가 한 단계 도약하는데 크게 이바지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정점으로 한국은 국가 위상이나 경제에서 또 한 단계의 도약을 위해 북방진출이 필요한 상황이었고, 또한 북한과의 관계개선과 경제협력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 회장은 지난 98년 2월 북경에서 송 호경 아태부위원장을 만나 89년 이후 중단상태에 있던 금강산관광사업을 북측에 제안하고, 실무단을 북한에 보내는 등 북한을 협상테이블로 이끌어 내는데 성공했다.

이후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고 정 주영 명예회장의 소 떼 방북이 이루어지고, 그해 11월 18일 역사적인 금강산 관광선의 첫 뱃고동이 울렸다. 특히 정 회장은 한반도의 평화통일 분위기를 정착시키고 남북협력 및 화해를 위해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을 적극 주선하는 등 남북관계 개선에 획기적인 변화를 이끌어냈다.

정 회장은 이후 지난 1998년 10월, 1999년 9월, 2000년 6월, 2000년 8월, 2000년 9월 등 김 정일 국방위원장을 총 5차례 만나면서 금강산관광사업, 개성공단사업, 류경 정주영체육관 사업, 철도·통신 등 굵직굵직한 남북경협사업을 추진해왔으며, 그 후에도 수십 차례 북경, 금강산, 평양, 개성 등을 오가면서 북측과 남북경협사업에 혼신의 힘을 다했다. 최근 2003년 7월에는 금강산관광사업, 개성공단사업 등 다양한 남북경협사업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미국, 일본 등에서 투자유치 활동을 적극 펼친바 있다.

특히 정 몽헌 회장은 2002년 11월 북측으로부터 금강산 및 개성 지역에 대한 50년간 토지 이용증을 확보하고 이어 북한으로 하여금 금강산 및 개성 동서 양대 특구 지정과 함께 특구법을 제정케 하여, 남북경협사업 활성화를 위한 국제적, 법적· 제도적 기반을 마련케 하는데 핵심역할을 수행했다.

정 회장의 이런 노력은 구체적 결실을 맺어 2002년 9월 남북을 잇는 철도 및 도로가 연결되고 2003년 2월에는 우리 민족의 염원인 금강산 육로관광이 이루어졌다. 또 같은 해 6월에는 실질적인 경제 파급효과가 기대되는 개성공단 착공식이 거행되고 최근에는 남북 당국이 남북경협활성화 차원에서 4대 경협 합의서를 발효시키는데 까지 이르렀다.

이처럼 정 몽헌 회장은 부친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유지를 받들어 남북경협사업이 남북관계 개선은 물론 남북 평화, 통일의 초석을 다질 수 있다는 역사적 사명감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사업적인 면에서도 21세기 무한경쟁 시대를 맞아 다양한 남북경협사업이 남북 모두에게 경제적으로 큰 도움이 된다는 판단 아래 사업을 저돌적으로 추진했다.

대북사업 외에도 정 몽헌 회장은 세계 전자산업계에 유명한 일화를 남겼다. 정 회장은 현대의 중후 장대한 산업구조를 첨단사업으로 전환시키는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정 회장은 1980년대 초 전자산업 분야에 뛰어들어 주요 경영전략을 진두지휘하면서 경기도 이천의 불모지에 현 하이닉스 반도체를 설립했다. 현대가 반도체를 시작할 때 일본 전자업체의 한 회장은 "건설과 중공업에 익숙한 현대지만 이 사업에서는 생전에 흑자는 못 볼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지만 정 몽헌 회장(당시 사장)은 취임이후 5년만인 1989년 첫 흑자를 기록해 업계를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또한 지난 1981년 현대상선 사장에 취임한 정 회장은 현대상선을 국내 최대의 운송기업으로 성장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정 회장의 사장 재임기간인 81년부터 88년까지 약 8년간은 현대상선이 단시일 내에 국내 최대 종합해운업기업으로 급성장한 도약기였다. 해운업계가 불황에 빠져 있던 80년대에 정 회장은 "불황기에 선박을 건조해 호황기에 대비한다"는 전략으로 투자를 더욱 확대하고 유조선, 벌크선, LNG 수송선 등으로 사업 다각화를 꾀해 흑자경영의 기반을 마련했다.

연세대를 졸업하고 미국 페어리 디킨슨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취득한 정 회장은 국내외 걸친 다양한 기업경영 경험과 많은 해외 활동으로 글로벌 기업 환경의 전형적인 경영자상을 보여 주었다.

정 회장은 직원들에게 '자율경영'을 늘 강조했다. 인간의 능력은 개발하기 나름이어서 경영자는 직원들이 자신감을 갖도록 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권한을 부여하되 책임감 또한 강조했다. 오너의 일방적 지시는 회사를 무기력하게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정 몽헌 회장은 소박하고 검소하며, 상하 직원들과 격의 없이 토론을하기를 즐겨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직원들 및 바이어들과 식사할 때 밥 먹는 것도 잊을 만큼 토론에 열중한 적도 있다. 또 정 회장은 보는 스포츠 보다 같이 뛰는 것을 좋아하는 진정한 스포츠맨이다. 스키와 골프를 좋아하던 정 회장은 91년 신입사원 단합대회에서 직원들과의 씨름 도중 인대를 다친 이후 스키보다는 수영과 골프를 즐겨했다.

정 회장은 선친인 고 정 주영 명예회장과 성격이 비슷하다는 평을 많을 들었는데 그 검소함도 그대로 물려받았다. 현대전자(현 하이닉스 반도체) 적선동 사옥시절 낡은 카페트를 교체하려는 총무부 직원들에게 "낡아도 쓸 수 있을 때까지 써야지 무슨 새 것이냐"며 나무라기도 했다. 헌 와이셔츠나 구두도 그냥 버리는 일이 없었다.

<현대아산 홍보실 제공> 연국희기자 ykookh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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