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문제없다?

  • 입력 2004년 5월 7일 18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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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문제없다.'

국제유가의 고공행진, 중국정부의 긴축억제책에 따른 차이나 쇼크, 외국인들의 한국증시 이탈로 인한 주가 급락세 등 악재(惡材)가 이어지고 있지만 정부는 현재의 경제상황을 이렇게 진단했다.

경제에 대한 불안이 가중되는 가운데 정부는 7일 오전 금융정책협의회와 경제장관회의를 잇따라 열어 금융시장 현황과 중국의 긴축정책 영향, 최근 경제동향 등을 집중 논의했다.

시장은 현실성있는 대책을 기다렸지만 정부는 "지금의 경제는 불안한 상황이 아니다"는 결론을 내렸을 뿐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특히 경제장관회의는 '4월중 소비 회복', '투자의 선행지표는 두자릿수 증가세', '소비자물가 추세적 안정세' 등 현실과 동떨어진 진단을 토대로 논의가 진행됐다. 이 때문에 정부가 현 경제상황을 지나치게 장밋빛으로만 본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내경기 호조세?=이날 열린 경제장관회의는 정부가 현 경제상황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재정경제부는 이 회의에서 국내경제 동향에 대해 "수출 호조세가 지속되고 있고, 소비는 4월중에 다소 회복될 것이며 투자도 선행지표인 국내기계수주와 기계류수입이 두자릿수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소비동향을 보여주는 대표 지표인 도소매판매는 3월중 전월대비 2.1% 감소했으며, 특히 소매판매는 전년동월대비 -3.5%로 지난해 7월 이후 가장 큰 폭으로 하락했다. 정부는 그러나 이는 폭설, 윤달 등으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이고 4월중에는 다소 회복될 것이라는 것이다.

설비투자도 3월중 전년동월대비 6.8%나 감소했는데도 선행지표의 움직임을 보면 곧 회복될 것이라는 전망.

재경부는 이어 고용사정이 풀리지 않고 생산자물가가 지난달 5년5개월만의 가장 큰 폭으로 올랐는데도 실업과 물가 상황도 나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주 국내 금융시장을 요동치게 만들었던 이른바 '차이나 쇼크'에 대한 인식도 다르지 않았다.

산업자원부는 "중국의 긴축정책이 무선통신기기와 브라운관 등 일부 소비재의 수출감소를 가져오겠지만 국내 산업과 수출에 전반적으로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제3의 오일 쇼크'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유가에 대한 정부의 중장기 전망은 어둡지 않다.

이헌재(李憲宰) 부총리 겸 재경부장관은 경제장관회의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현재의 고유가에 대해서는 뉴욕 월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미국의 재고감소 등으로 인한 일시적 현상이라는 견해가 우세하다"며 "구체적인 하락 시기는 점치기 힘들지만 1, 2개월 후에는 떨어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정부=사실 이헌재 경제팀은 올해 들어 내수침체가 계속되고 투자가 곤두박질치는 과정에서도 낙관적인 전망만 쏟아놓았다. '올해 한국경제는 5%대 후반 성장할 것', '올해 취업자수가 지난해에 비해 55만명이 늘어날 것'이라는 발언이 잇따랐다.

물론 지난해 경기가 워낙 좋지 않았던 데다가 수출 호조의 영향으로 이 같은 전망이 맞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체감(體感)경기'에 영향을 미치는 소비와 투자가 바닥세를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현실과 동떨어진 장밋빛 전망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정부의 인식과는 달리 국내외 전문가들 사이에는 현재의 국내외 경제상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고유가와 관련, 국제에너지기구(IEA)의 클로드 만딜 사무총장은 6일 한 프랑스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유가가 몇 주 안으로 세계 경제 회복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오를 가능성이 있다"며 "그것은 새로운 오일 쇼크를 의미한다"고 경고했다.

IEA는 얼마전 공식보고서를 통해 현재의 고유가가 지속되면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성장률이 평균 0.8%포인트씩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삼성경제연구소 정문건(丁文建) 전무는 "중국의 긴축정책으로 올 1·4분기(1~3월) 9.7%였던 경제성장률이 7%대로 내려앉을 경우 한국은 5%의 성장률도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안일한 인식과 태도가 아니라 정확한 상황 판단과 최악을 대비한 대책을 통해 국민을 안심시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재경부 고위 당국자는 "최근 경제상황이 어렵게 돌아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정부가 대놓고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 수는 없지 않느냐"고 토로했다.

신치영기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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