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고승철 칼럼]국가경쟁력 괜찮은가?

  • 입력 2004년 5월 11일 18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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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산맥을 병풍처럼 두른 스위스의 레만 호수. 짙푸른 물, 그 위에 떠 있는 하얀 요트들이 절묘한 조화를 이뤄 절경을 빚어 내고 있다.

로잔…. 레만 호반(湖畔)에 있는 아름다운 고도(古都)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본부와 올림픽 박물관이 있어 올림픽 관련 중심 도시이기도 하다. 황영조 선수가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때 신었던 운동화도 이 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IMD, 60개 나라중 35위 평가▼

경제 경영 전문가들에게도 로잔은 친근한 도시다. 한계효용이론을 주창한 로잔학파는 경제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바 있다. 요즘엔 이곳에 있는 국제경영개발원(IMD)이 국가경쟁력 순위를 발표함에 따라 주목을 받는다. 이 보고서는 국가경영에 대한 성적표 성격을 띠고 있다.

IMD는 로잔 시내에 있는 소규모 교육 및 연구기관이다.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운영하고 있으며 몇몇 연구진이 해마다 국가경쟁력 보고서 등을 작성하고 있다. 이런 자그마한 기관이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미치는 여러 자료를 내놓고 있으니 스스로 막강한 경쟁력을 갖춘 셈이다. 강소국(强小國) 스위스의 특성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하겠다.

몇 년 전에 로잔을 방문했던 추억을 떠올리면 낭만적인 감흥에 젖어야 할 법한데 그렇지 못해 안타깝다. IMD가 밝힌 한국의 낮은 국가경쟁력 탓이다.

최근 보고서에서 한국의 올해 국가경쟁력은 인구 2000만명 이상의 30개국 가운데 작년과 같은 15위로 나타났다. 전체 조사대상국 60개국 중에서는 작년 37위, 올해 35위로 엇비슷하다. 올해 전체 순위에서 한국은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라던 싱가포르(2위), 홍콩(6위), 대만(12위)보다 훨씬 뒤졌다.

부문별로 따지면 걱정스러운 점이 수두룩하다. 노사관계에서는 60위로 작년에 이어 2년째 꼴찌다. ‘대학교육이 경제적 수요를 충족하는가’라는 항목은 59위.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가 55위, 정부의 경제운영 성과가 49위다.

성적이 좋은 부문도 적잖다. 초고속통신망(1위), 기업의 개혁마인드(3위), 경영진의 국제경험(5위) 등 통신 인프라와 기업 부문이다.

한국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보이지 않는가. 노사관계, 교육, 정부 등이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음을 알 수 있지 않는가. 우리가 아무리 부인하더라도 외국인의 눈엔 한국은 노사관계가 매우 불안정한 나라로 비친다. ‘친노(親勞)’ 성향 인물로 분류되는 노무현 대통령이 “정치경제 상황이 불안하지 않은데 왜 투자를 하지 않느냐”고 주장해도 투자 결정 당사자인 외국인과 국내 기업은 불안감을 떨칠 수 없어 투자를 꺼린다. 불안하지 않음은 주장 대신 객관적 상황으로 증명돼야 한다.

인적자원이 거의 유일한 자원인데도 교육 효율성이 뒤떨어진 나라로 평가되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평준화 교육이란 명분 때문에 인재들은 창의력, 수월성(秀越性)을 발휘하지 못하고 뒷덜미를 잡히고 있다.

피터 로랑지 IMD 학장은 자주 한국을 찾는다. 작년 10월 방한 때는 한국의 문제점으로 강경한 노조, 정부 관료의 부패, 기업하기 힘든 환경 등을 들었고 “국가경쟁력을 높이려면 ‘유연한 사고(思考)’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번 달에 서울에 와서는 “부패를 없애고 교육 현장에 경쟁 원리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정부가 민간 경쟁력 옥죄어서야▼

어떤가. IMD의 보고서와 충고가 옳다고 여겨지지 않는가. 국제적으로 비교해서 경쟁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정부와 권력자들이 그나마 경쟁력이 높은 민간부문을 옥죄고 그걸 ‘개혁’이란 그럴듯한 이름으로 포장한다면 한국의 국가경쟁력은 더욱 떨어질 것 아닌가. 열등생이 우등생을 가르친다고 나서는 상황과 마찬가지 아닌가.

로잔에서 바라보는 한국, 레만호수 물빛처럼 청신호로 바뀌었으면….

고승철 편집국 부국장 che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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