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성완경/‘공공미술품’ 겉치레 벗어나야

  • 입력 2004년 5월 21일 18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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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물 부설 문화예술장식품’이란 게 있다. 일정규모(연면적 1만m², 층수 10층) 이상의 건물을 신축하거나 증축할 때 건축주가 건축비의 일정 비율(현행 0.7% 이상. 단 건물의 소재지, 종류, 규모에 따라 차등적용)만큼 돈을 들여 미술작품을 설치해야 준공허가가 나오게 되어 있는데, 이렇게 의무적으로 설치하는 미술품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제도는 1984년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돼 전국 대도시에 적용되고 있다. 설치 건수와 금액을 보면, 2002년의 경우 전국적으로 747점에 515억원 상당의 작품이 만들어졌다. 작품당 평균 6900만원꼴이다. 우리 미술시장의 거래액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으나, 515억원이면 아마도 그에 맞먹거나 상회하는 액수로 추측된다. 그만큼 작가와 중개인이 눈독을 들일 만한 큰 ‘먹을거리’ 시장인 셈이다.

문제는 이 시장이 투명하지 않고 건설업계 또는 군납 비리와 맞먹을 정도의 타락상을 보인다는 점이다. 특히 심한 것이 작품 제작비에 관련된 음성적이고도 만성화된 부정, 이른바 ‘꺾기’식 가격 담합과 리베이트 관행이다.

도시미관의 측면에서도 이 제도의 평판은 좋지 않다. 준공허가를 얻기 위한 억지춘향식 설치가 대부분이고 ‘문패 조각’ 같이 획일적이고 요식적이다. 작품 내용도 우리의 생활정서와 오늘의 문화감각에 맞지 않는 장식적인 것들이 대부분이고 ‘촌스럽게’ 엄숙하고 고압적인 것들도 흔하다. 시각공해라는 말까지 나온다.

금년은 이 제도가 만들어진 지 꼭 20년이 되는 해다. 이 제도는 애초에 외국 제도를 우리 현실에 어설프게 이식한 데서 문제를 안고 출발했다. 문제를 너무 가볍게 보았던 것이고 오늘의 폐해는 상당 부분 여기서 기인한다. 적어도 세 가지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

첫째는 건축주측의 문화적 동기 부여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둘째는 재원이 정말 공공적이냐는 문제다. 셋째는 관리 프로세스의 문제다. 요컨대 제대로 된 공공미술이 가능하려면 그 돈의 출처에 공공적 성격이 있어야 하고 관리 프로세스도 투명하고 공공적이며 전문적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정부는 이 제도를 만들면서 그 재원 조달의 책임을 민간쪽에, 즉 건축주쪽에 떠넘겼다. 또 심의 제도가 있지만 요식 절차일 뿐이고 작품의 사후관리도 없다. 이 제도를 인식시키기 위한 홍보와 교육도, 제도 개선과 보완을 위한 제대로 된 실태 파악과 공청회도 없었다. 부양 능력 없는 애비가 자식을 낳은 꼴이다.

지금 우리의 ‘건축물 부설 문화예술장식품’은 도시의 문화적 품위를 드러내는 게 아니라 그 획일성과 내용의 건조함으로 인해 오히려 문화후진국임을 드러내는 낯 뜨거운 진열품이 돼버렸다. 이제 이 제도의 문화적 위선과 부끄러움을 생각해볼 때가 됐다. 놔두면 계속 악화되는 것, 그리고 그 방치는 그 제도에 관계된 모든 당사자, 나아가 우리 사회 전체와 정부의 무능을 드러낼 뿐인 것, 그것이 바로 이 제도다.

최근 문화관광부가 새 예술정책의 일환으로 이 제도의 개정을 추진한다는 사실이 미술계에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그 논란이 우리 미술계의 자정능력과 새 시대에 걸맞은 철학을 보여주는 품위 있고 생산적인 것이 되기를 기대한다. ‘공공’이란 개념은 만들어 가는 과정이지 제도의 결과물은 아니기 때문이다.

성완경 미술평론가·인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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