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사람들]달러로 바꿔 놓을까… 해외부동산 사둘까…

  • 입력 2004년 5월 24일 18시 23분


《지속되는 경제불안과 주한미군 차출 등에 따른 안보불안 심리 때문에 달러를 보유하거나 해외부동산을 구매하려는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과거 부유층에만 국한됐던 ‘달러 보유 붐’은 고액연봉을 받는 샐러리맨들에게까지 확산되고 있고, 전문 구매대행업체들의 영업활동이 활발해지면서 해외부동산 투자 규모가 지난해보다 두 배 이상 커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달러 보유

“일단 바꿔놓고 보자.”

고유가와 경기침체에 대한 불안심리가 확산되면서 일부 부유층과 중산층을 중심으로 ‘외화 소지 붐’이 다시 일고 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외환위기 당시 만연했던 ‘달러 사재기’가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

외국계 투자은행에 다니는 A씨(30)는 월급날만 되면 꼬박꼬박 은행을 찾는다. 생활비만 남기고 모두 달러로 환전해 예금하기 위해서다.

A씨는 “경제불안과 안보불안 등으로 투자할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라며 “그나마 달러를 손에 쥐고 있으면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1년 동안 외화예금통장을 굴리고 있다는 A씨는 “서로 밝히길 꺼려해서 그렇지 실제로 주변에 이렇게 예금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고 귀띔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4월 15일 현재 거주자 외화예금 잔액은 191억4000만달러로 사상 최고치. 이 중 기업이 아닌 개인들이 보유한 잔액의 비중은 2002년 19%, 지난해 29%에 이어 올해 3월에는 30%에 도달했다.

이 은행 국제국 관계자는 “개인 부문이 늘어난 것은 국내 금리 수준이 낮은 데 따른 이재성 투자의 성격과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심리가 혼재되어 나타나는 외화 수요인 것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특별한 용도 없이 원화를 은행에서 달러로 교환해 가는 경우도 빈번하다.

K은행 서초동지점 외환계 김모 과장은 “달러로 바꿔가는 고객들을 상담해 보면 경제가 불안해 달러를 그냥 집에 보관해 놓겠다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가족이 총출동해 1인당 한도액인 1만달러 미만씩을 환전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는 것.

외환은행 본점 영업부 정연호 팀장은 이에 대해 “불안심리도 한 이유지만 ‘환테크’의 중요성을 깨달은 고객들의 경제적 식견이 넓어진 결과”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해외 부동산 구입

서울 강남구에 사는 한모씨(62·여)는 이달 초 아는 사람을 통해 “미국 뉴저지에 있는 160만달러(19억여원)짜리 6층 건물을 구입하겠느냐. 직접 가지 않아도 살 수 있다”는 제의를 받았다.

선뜻 응하지는 않았지만 전체 대금 중 10%를 계약금으로, 25%를 중도금으로 지불하면 나머지는 미국에서 연이자 6.5%의 모기지론으로 대출해 주겠다는 솔깃한 조건이었다.

이처럼 경기불안을 틈타 부유층에 접근해 해외 부동산 투자를 유도하는 구매대행업자들이 증가하고 있다. 이들은 주로 미국 호주의 교포 출신 중개업자들로 현지와 한국을 오가며 알음알음 투자자를 물색하고 있다.

특히 국내 변호사들이 대신 계약해 주기 때문에 안전하게 거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입소문을 타면서 자산가들이 적극 나서고 있는 것.

해외투자대행회사를 운영하는 박모 변호사는 “올 5월 현재까지 이뤄진 상담 및 계약액이 지난해 전체에 비해 50% 이상 늘어났다”며 “수요가 늘면서 미국 부동산 에이전트들이 대거 한국으로 진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계약이 확실시돼 해외로 나갈 돈이 우리 회사에서만 400억원 가까이 된다”며 “연말까지 매출이 지난해의 두 배가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 부동산 에이전트인 조모씨도 “올해 들어 투자 상담이 크게 늘고 있다”며 “사실 투자 목적도 있지만 여차하면 건너가 살기 위한 주거용 건물이 많이 거래되는 편”이라고 말했다.

최근 미국의 한 쇼핑몰을 계약한 지방의 자산가인 고모씨는 “돈 있는 사람을 마치 부도덕한 계층인 것처럼 몰아붙이는 최근의 사회 분위기가 싫어 아예 미국에서 마음 편히 살 생각”이라고 털어놓았다.

문제는 이들 해외 부동산 취득이 대부분 ‘환치기’ 등 탈법이나 편법을 통해 이뤄진다는 점.

한국은행 외환심사팀 이희원 차장은 “해외 부동산 취득은 세금 등을 우려해 환치기 등 편법을 동원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유재동기자 jarrett@donga.com

신수정기자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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