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테리어업체 운영자 김모씨(40)는 지난 13개월 동안 적자를 봤지만 매달 7만8000원씩 국민연금 부담금을 내야 했다. 수익이 없어도 연금을 내야 하느냐는 김씨의 항변에 국민연금관리공단측은 “재산이 있으면 연금을 내야 하며 연체하면 재산을 가압류할 수 있다”고 답변했다.
김씨와 같은 사람에게 국민연금은 현재로서는 ‘든든한 노후보장 상품’이 아닌 ‘고통’일 따름이다. 국민연금을 내기도 벅찰뿐더러 공단측의 잇따른 부담금 인상타령을 듣고 있노라면 ‘내 돈을 되찾을 수 있을까’란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
김씨뿐만 아니다. 직장가입자들은 “월급쟁이가 봉이냐”고 반발한다. 회사원 오모씨(35)는 “왜 지역가입자는 소득의 7%를 내고 월급쟁이는 소득의 9%를 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흥분했다.
최근 인터넷에 ‘국민연금의 비밀’에 이어 ‘문답으로 알아보는 국민연금’ 등 국민연금을 비판하는 글이 잇따르고 오프라인에서 ‘안티 국민연금’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이 그만큼 팽배해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국민연금관리공단 및 보건복지부 관계자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국민의 연금에 대한 불만이 쌓여 왔으나 현 제도로는 보완책을 찾을 수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논란의 불씨를 안고 있는 연금=국민연금은 설계 당시부터 논란의 불씨를 안고 있었다. 1988년 1월 1일 시행된 국민연금에 대해 정부는 ‘월 수입의 3%를 내고 평균 수입의 70%를 연금으로 받는다’고 선전했다. 그러나 이 같은 ‘장밋빛 구상’은 국민연금을 매력적으로 꾸며 조기 정착시키려는 의도가 담겨 있었다는 것이 복지부측의 설명이다.
국민연금은 5년마다 설계를 다시 하도록 되어 있는 ‘수정 적립 방식’이다. 복지부 연금정책과 박찬형(朴贊衡) 과장은 “5년마다 연금의 재정상태와 경제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납부액과 급여액을 조절하도록 연금법에 규정돼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이 같은 방식에 따라 1998년 지급률이 70%에서 60%로(최고 가입기간인 40년을 채웠을 경우), 납부액이 수입의 3%에서 7∼9%로 조정됐다.
국민연금은 경기침체나 불황으로 상황이 나빠지면 지급률 및 납부액을 조정할 수밖에 없으며 고령층 급증 등 급여 지급 구조가 달라져도 역시 가입자의 부담을 늘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대책 없는 국민연금관리공단=자영업자와 직장인의 국민연금에 대한 불만은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노후를 대비할 심리적 여유가 없어졌기 때문에 더욱 커지고 있다. 당장 하루 벌어 하루 먹기가 힘들어지는 상황이 됐지만 공단은 징수에만 신경을 써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벌이가 줄어든 가입자에게 적절한 절차를 밟을 것을 안내해주기보다는 ‘안 내면 재산을 압류한다’는 식으로 으름장만 놓아왔기 때문이다.
또 직장가입자와 자영업자가 대부분인 지역가입자의 연금 부담금 형평성 등에 대해 공단은 대책이 없다는 입장이다.
국민연금관리공단 정연준(鄭然俊) 업무이사는 1일 복지부에서 가진 브리핑에서 “국민연금의 운영상 미비점이 있지만 대책이 없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소득을 숨기는 한국 자영업자들의 관행상 이 같은 미비점에 대한 개선책은 당장 만들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이대론 안 된다=국민연금은 우리 사회가 고령화사회(노인인구가 전체 인구의 7%·2000년)에서 고령사회(노인인구가 전체 인구의 15%·2019년 예상)로 진입할 것이 예상됨에 따라 이미 빨간불이 켜졌다. 앞으로 연금은 최저생계비 수준에도 못 미치는 ‘생활보조금’으로 전락할 전망이다. 매달 230만원을 벌어 20년간 20여만원씩 연금을 부으면 고작 월 57만원을 받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급여수준을 현행 60%에서 2008년까지 50%로,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2030년까지 15.9%로 조정하지 않으면 2047년에는 바닥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계산이다.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의 고갈을 막으려면 보다 투명하고 합리적인 제도로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김연명(金淵明) 교수는 “소득을 추정하는 무리한 징수가 계속되면 국민의 반발은 반복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나성엽기자 cp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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