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오명철/‘짝퉁’

  • 입력 2004년 6월 1일 18시 52분


‘짝퉁’은 가짜 명품(名品)을 일컫는 용어다. ‘진품’ ‘정품’ ‘오리지널’의 반대 개념으로 최근 국어사전에 속어(俗語)로 올랐다. 가짜가 ‘짜가’를 거쳐 ‘짝’으로 축약된 뒤 품질이 낮다는 의미의 ‘퉁’과 결합해 이와 같은 국적불명의 용어가 탄생했다는 설(說)도 있지만 분명치는 않다. 한국이 홍콩에 이어 ‘짝퉁의 천국’이 된 것은 1990년대 후반 해외 명품 브랜드들이 한국에 대거 진출한 이후의 일. 이제는 카탈로그만 갖다 주면 24시간 안에 짝퉁을 만들어 낼 정도라고 한다.

▷짝퉁은 페라가모 루이뷔통 구치 등 유럽산 고급의류와 장신구에서부터 푸마 나이키 등 미국산 캐주얼웨어와 신발류에 이를 정도로 다양하다. 짝퉁도 등급이 있고, 제대로 된 A급 짝퉁은 정품의 절반 가격에 해당한다. 명품을 똑같이 복제해내는 짝퉁이 있는가 하면, ‘PUMA’라는 브랜드를 ‘PAMA’ ‘PIMA’ ‘BIMAN’으로, ‘NIKE’를 ‘NICE’ ‘MIKE’로, ‘빈폴’을 ‘빈곤’으로 패러디한 짝퉁도 있다. 최근에는 ‘信나면’(辛라면) ‘生어우동’(生우동) ‘양파랑’(양파깡) ‘죠리뽕’(죠리퐁) 등 음식과 과자류에도 짝퉁이 번지고 있다.

▷한국에서 이처럼 짝퉁이 유행하고 있는 것은 명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기 때문이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부유층이 주로 명품을 구매하지만 한국에서는 ‘보통사람’들도 대책 없이 명품을 선호한다. 자신의 분수나 내면보다는 남에게 어떻게 비치는가를 더 중요시해 온 한국인의 사회 심리적 특성 때문이다. 프랑스의 문명비평가인 기소르망은 언젠가 이를 가리켜 “한국인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호모 아파런투스(Homo apparentus·겉모습 지향적 인간)”라고 지적한 바 있다.

▷사람도 명품이 있고 짝퉁이 있다. 좋은 가정에서 태어나 명문대학을 나왔지만 짝퉁에 불과한 이가 있고, 평범한 가정에서 자수성가했지만 풍부한 교양과 자기개발로 명품이 된 사람도 있다. 요즘 우리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제대로 된 명품보다는 겉만 번지르르한 짝퉁이 더 많은 것 같다. 이 나라가 물건에 이어 인물마저 ‘짝퉁의 천국’이 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두렵고 걱정되는 일이다.

오명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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