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 “시장개혁 속도 조절”

  • 입력 2004년 6월 3일 18시 07분


강철규(姜哲圭) 공정거래위원장은 3일 “정부가 추진 중인 ‘시장개혁 3개년 로드맵’은 정부의 직접규율을 시장의 자율규율로 점진적으로 전환하는 것으로 개혁의 속도를 조절해달라는 재계의 의견을 충분히 수용했다”고 밝혔다.

4대그룹 총수와의 연쇄 간담회를 갖고 있는 강 위원장은 이날 낮 서울 강남구 역삼동 리츠칼튼호텔에서 정몽구(鄭夢九) 현대자동차 회장과 만나 “시장개혁의 속도를 조절해 달라”는 정 회장의 요청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1시간30분 동안 오찬을 겸한 이 자리에는 강대형(姜大衡) 공정위 사무처장과 정순원(鄭淳元) 현대차 기획총괄본부장(사장)도 참석했다.

이날 만남에서 강 위원장은 “시장개혁 로드맵에 명시된 출자총액제한제도 졸업요건 충족 등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노력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대해 정 회장은 “시장개혁 로드맵과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며 적극 협조하겠다”고 답변했다.

강 위원장은 이어 협력업체와의 거래에 있어 납품단가 인하 등 비용을 하도급 업체에 전가하는 것을 자제해달라는 ‘주문’도 했다.

이날 두 사람의 만남은 우여곡절 끝에 이뤄졌다.

공정위는 당초 이날 간담회가 끝난 뒤 강 위원장이 현장에서 기자 브리핑을 갖기로 했다며 시간과 장소를 기자들에게 공개했다. 두 사람이 만나기로 한 장소는 서울 서초구 반포동 메리어트호텔이었다.

그러나 뒤늦게 정 회장이 “기자들에게 공개하면 만나지 않겠다”는 뜻을 전해와 장소를 리츠칼튼호텔로 바꾸고 간담회도 비공개로 진행했다. 강 위원장은 회동이 끝나고 정부과천청사로 돌아와 기자들에게 내용을 설명했다.

이 같은 ‘해프닝’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강 위원장은 지난달 27일 구본무(具本茂) LG 회장을 만날 때에도 ‘언론에 비공개로 해 달라’는 구 회장측의 간곡한 요청에 따라 시간과 장소를 비밀에 부친 채 기자들을 따돌리며 비공개 회동을 가졌다.

기자들에게 공개된 지난달 31일 최태원(崔泰源) SK 회장과의 간담회 때는 약속 장소에서 미리 기다리던 최 회장이 뒤늦게 도착한 강 위원장에게 90도 가까이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 강 위원장은 간단한 목례로 답하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간담회가 끝날 때마다 강 위원장은 “재계가 시장개혁의 취지를 잘 이해하고 있다”는 취지의 브리핑을 하거나 자료를 돌렸다. 반면 해당 그룹측에서는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에 대해 입을 다물었다.

이 같은 ‘어색한 모습’과 관련해 정부와 재계의 관계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김종석(金鍾奭)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기업정책의 당사자인 공정위와 재계의 만남 자체는 서로 신뢰를 쌓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며 “하지만 간담회를 비공개로 하고 밀담을 나누는 것은 어쩐지 바람직한 파트너십의 모습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신치영기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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