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그룹 총수와의 연쇄 간담회를 갖고 있는 강 위원장은 이날 낮 서울 강남구 역삼동 리츠칼튼호텔에서 정몽구(鄭夢九) 현대자동차 회장과 만나 “시장개혁의 속도를 조절해 달라”는 정 회장의 요청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1시간30분 동안 오찬을 겸한 이 자리에는 강대형(姜大衡) 공정위 사무처장과 정순원(鄭淳元) 현대차 기획총괄본부장(사장)도 참석했다.
이날 만남에서 강 위원장은 “시장개혁 로드맵에 명시된 출자총액제한제도 졸업요건 충족 등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노력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대해 정 회장은 “시장개혁 로드맵과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며 적극 협조하겠다”고 답변했다.
강 위원장은 이어 협력업체와의 거래에 있어 납품단가 인하 등 비용을 하도급 업체에 전가하는 것을 자제해달라는 ‘주문’도 했다.
이날 두 사람의 만남은 우여곡절 끝에 이뤄졌다.
공정위는 당초 이날 간담회가 끝난 뒤 강 위원장이 현장에서 기자 브리핑을 갖기로 했다며 시간과 장소를 기자들에게 공개했다. 두 사람이 만나기로 한 장소는 서울 서초구 반포동 메리어트호텔이었다.
그러나 뒤늦게 정 회장이 “기자들에게 공개하면 만나지 않겠다”는 뜻을 전해와 장소를 리츠칼튼호텔로 바꾸고 간담회도 비공개로 진행했다. 강 위원장은 회동이 끝나고 정부과천청사로 돌아와 기자들에게 내용을 설명했다.
이 같은 ‘해프닝’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강 위원장은 지난달 27일 구본무(具本茂) LG 회장을 만날 때에도 ‘언론에 비공개로 해 달라’는 구 회장측의 간곡한 요청에 따라 시간과 장소를 비밀에 부친 채 기자들을 따돌리며 비공개 회동을 가졌다.
기자들에게 공개된 지난달 31일 최태원(崔泰源) SK 회장과의 간담회 때는 약속 장소에서 미리 기다리던 최 회장이 뒤늦게 도착한 강 위원장에게 90도 가까이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 강 위원장은 간단한 목례로 답하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간담회가 끝날 때마다 강 위원장은 “재계가 시장개혁의 취지를 잘 이해하고 있다”는 취지의 브리핑을 하거나 자료를 돌렸다. 반면 해당 그룹측에서는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에 대해 입을 다물었다.
이 같은 ‘어색한 모습’과 관련해 정부와 재계의 관계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김종석(金鍾奭)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기업정책의 당사자인 공정위와 재계의 만남 자체는 서로 신뢰를 쌓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며 “하지만 간담회를 비공개로 하고 밀담을 나누는 것은 어쩐지 바람직한 파트너십의 모습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신치영기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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