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포커스]자동차 10년 타기 시민운동연합 임기상대표

  • 입력 2004년 6월 13일 18시 43분


임기상 대표는 폐차 직전의 차를 사다가 고쳐서 쓰곤 한다. 영화 ‘친구’에서 부산 영도다리를 달리기도 했다는 브리사는 소음기 쪽에서 나는 잡음을 제외하면 특별한 고장 없이 아직도 잘 달린다고 한다.-강병기기자
임기상 대표는 폐차 직전의 차를 사다가 고쳐서 쓰곤 한다. 영화 ‘친구’에서 부산 영도다리를 달리기도 했다는 브리사는 소음기 쪽에서 나는 잡음을 제외하면 특별한 고장 없이 아직도 잘 달린다고 한다.-강병기기자
‘자동차 10년 타기 시민운동연합’의 임기상(林奇相·46) 대표가 아끼는 자동차 가운데 하나는 23년 된 ‘브리사’다. 그는 20년, 30년 된 고령(高齡)차를 직접 몰고 다니면서 “오래된 차도 충분히 쓸 만하다”는 메시지를 전파하고 있다. 브리사 외에 33년 된 코티나, 18년 된 포니 픽업, 17년 된 프레스토 등이 그의 소장품.

오랜 세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깔끔한 외양의 브리사는 며칠 전 서울에서 대구까지 장거리를 아무 탈 없이 왕복 운행했을 정도로 아직 힘이 넘친다고 그는 자랑했다.

“우리나라는 통상 4년 타면 차를 바꾸고 8년 되면 아예 폐차시킵니다. 신모델 위주로 즉흥적인 구매를 하기 때문이죠. 양복이나 구두보다 자동차를 더 자주 바꾼다는 말이 나올 정도니…. 10년 이상 된 차가 미국은 전체의 20%, 일본은 18%이지만 우리나라는 겨우 2%에 불과합니다. 자원 낭비가 아닐 수 없지요.”

그는 87년 자동차정비업을 시작하면서부터 ‘10년 타기’에 관심을 갖고 주변에 꾸준히 이를 권유해 왔다. 그러다가 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아껴 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국민적 위기의식이 싹트면서 10년타기 운동을 본격화했다. 1998년 1월 1일을 기해 ‘자동차 10년 타기 시민운동연합’을 발족한 그는 전국 1000여개 정비소를 회원으로 가입시키며 세를 키워나갔다.

‘10년 타기’가 확산되면서 그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자동차 소비자권리 찾기운동’으로 옮겨갔다. ‘자동차 10년은 탑시다’라고 권유하다 보면 “애초부터 잘 만들어야 오래 탈 것 아니냐”는 반문을 듣기 일쑤였다. 조금만 쓰면 자꾸 고장이 나 엄청난 수리비가 들어가는데 10년 동안 끌어안고 있으라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실 그도 자동차정비소를 하면서 신차의 품질에 의문을 품어 오던 차였다. 교통사고로 인명 피해가 나는 경우를 보면 혹 자동차 결함은 아닐까 하고 ‘엉뚱한’ 상상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자동차 제조사에 대한 리콜 운동. 그는 현대자동차 중형승용차의 엔진오일이 새는 현상을 밝혀내는 등 크고 작은 차 결함을 지적해 99년부터 지금까지 100만대 이상의 자동차를 리콜토록 하는 데 성공했다. 이렇게 된 데에는 당연히 ‘10년 타기 운동’의 성과가 밑바탕이 됐다. ‘10년 타기’가 세간에 알려지면서 신차에 이상이 생길 경우 제조업체보다 먼저 ‘10년 타기 시민운동연합’(www.carten.or.kr)으로 인터넷 제보를 하거나, 회원 정비소들이 수리하면서 발견한 반복 고장을 본부에 알려오는 등의 사례가 늘어났던 것.

하지만 한번 리콜을 하면 많게는 수백억∼수천억원의 비용이 들어가고 회사 이미지가 손상되기 마련인 자동차 제조사의 입장에서는 그가 곱게 보일 리 없다. 이 때문에 그에게는 ‘자동차 제조업계의 오사마 빈 라덴’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지난달 현대자동차가 미국에서 엔진출력 과대표시 문제로 6개 차종 12개 모델을 구입한 85만여명의 미국 소비자에게 1인당 25∼225달러씩 보상하기로 해 화제가 된 일이 있지만, 사실 이는 그가 이미 2000년부터 문제를 제기했던 사안이다. 그는 당시 국산 자동차들의 엔진출력이 과대 표시됐다며 건설교통부에 이의를 제기했고, 건교부는 6개월간의 조사 끝에 이를 인정해 이듬해 시정조치를 내린 바 있다. 현재 그는 국내에 판매된 차량에 대해서도 미국에서와 같은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며 국내 자동차 3개사를 대상으로 손해배상소송을 추진 중이다.

임 대표는 자동차 소비자가 제 권리를 찾기 위해서는 리콜 관련법의 개정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현행법은 자동차 제조사가 늑장을 부리는 게 유리하게 돼 있습니다. 공식적인 리콜이 취해지기 전 자비로 고장을 수리한 소비자에 대해서는 보상을 안 해 줘도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심지어 단종된 뒤에 생색내기 리콜을 실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미국처럼 리콜조치 이전의 수리비용도 보상해 주도록 법을 바꿔야 합니다.”

성동기기자 esprit@donga.com

임기상 대표는

△1958년 서울 출생

△1978년 서울 장훈고 졸업

△1987년 서울 영등포에서 자동차정비소 개업

△1998년 ‘자동차 10년 타기 시민운동연합’ 활동 시작

△1999년 ‘자동차세 차등부과제’ 실시 촉구하며 국토종단

△2001년 서울 정수기능대학 자동차기술학과 졸업

△2001년 서울시 교통문화대상 수상

△2002년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 입학

△현재 건설교통부 자동차제작결함 심사평가위원, 건설교통부 NGO 정책자문위원

△저서 ‘자동차 10년타기 길라잡이’(2001년), ‘자동차도 화장(化粧)을 한다’(2003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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