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시장에서 국경이 사라지고 있다. ‘국산품 애용’이라는 말도 쏙 들어간 지 오래다. 수출을 통해 경제성장을 이룬 한국경제는 이제는 저임금 경쟁국의 추격을 받고 있다. 선진국의 시장개방 압력도 어느 때보다 거세다.
서울시립대 이번송 교수(63·경제학)가 김훈(26·연세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 이유나씨(21·서울시립대 경제학과 3학년), 김새별양(18·서울 혜성여고 3학년)을 만나 세계화의 거센 도전에 맞닥뜨린 한국경제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
●자유무역과 세계화의 흐름
▽이번송 교수=자유무역을 통해 외국에서 자동차를 수입하는 이유는 뭘까요?
▽이유나=국내 업체들의 시장독점을 막을 수 있어요. 소비자에게도 이익이죠. 만약 높은 관세를 매겨 수입을 억제한다면 소비자의 비용은 그만큼 늘어날 겁니다.
▽김훈=국내 자동차업체들은 외국 기업과 경쟁하기 위해 기술 개발과 투자를 하게 돼 효율적인 생산능력을 갖추게 됩니다.
▽이 교수=모두 맞는 얘기입니다. 자유무역은 경제성장에 도움이 됩니다. 1970년대 초 1인당 국민소득이 남한보다 높았던 북한이 폐쇄경제 때문에 몰락한 것이나, 1990년대 보호무역에서 시장개방주의로 전환한 뒤 최근 연 8%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보이고 있는 인도의 사례에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유무역에 대해 반대가 많은 이유는 뭘까요?
▽이유나=절대우위론이나 비교우위론 등을 토대로 한 자유무역은 국가 경제 전체에는 이득이 되지만 필연적으로 손해 보는 사람들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이익을 보는 사람들은 소극적인 반면 손해 보는 사람들은 생존권이 걸려 있기 때문에 격렬하게 반대하는 것이죠.
▽김새별=자유무역의 장점이 많지만 경쟁력이 떨어지는 산업은 보호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이를테면, 스크린쿼터(한국영화 의무상영 제도)가 있었기 때문에 한국영화 산업이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이 교수=경제학자들은 자유무역을 포기하기보다는 자유무역을 통해 얻은 이익을 세금으로 거둬들여 손해 보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말합니다. 자유무역과 세계화를 통해 얻어지는 기술진보와 경제성장의 이득이 더 크다는 걸 인식해야지요. 그리고 이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사람들에 대한 적절한 지원방안도 고민해야 하고요.
●한국 기업의 해외 이전과 외국인 노동자
▽이 교수=자유무역과 세계화는 상품에만 국한되는 게 아닙니다. 인적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까지 포함하고 있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자리가 없다고 아우성인데 왜 외국인 노동자를 불러들여야 할까요?
▽김훈=외국인 노동자들이 주로 일하는 곳은 한국인들이 기피하는 중소기업의 저임금 일자리입니다. 한국인의 소득수준이 다른 국가보다 높을 경우 외국인 노동자의 유입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게 아닐까요.
▽이 교수=한국의 경쟁국 중에는 임금수준이 낮은 중국과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있어요. 세계화된 시장에서는 단순노동집약적 산업보다 기술집약적 산업에 비교우위가 있습니다.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과 적게 받은 사람의 소득격차도 갈수록 커집니다. 대학만 졸업하면 평생직장을 갖게 되는 시대는 지났죠. 스스로 자신의 인적 자본을 늘려 세계화시대에 뒤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김새별=기업들이 정부 규제를 피해 한국을 떠난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일자리가 그만큼 줄게 되니까 젊은 학생들이 나중에 취업을 못하게 되는 건 아닐까요?
▽이유나=정부나 노동자들이 투자환경을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면 더 나은 외국기업이 국내로 옮아올 수도 있겠죠.
▽이 교수=기업이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면 단기적으로 국내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은 당연합니다. 대부분 한국에서 채산성이 맞지 않기 때문에 시장논리에 따라 공장을 옮기는 것이죠. 그러나 연구개발 등 고부가가치 사업부문을 한국에 남기거나 부품을 한국에서 생산해 현지 조립 생산하는 식의 해외이전은 장기적으로 볼 때 한국경제에 긍정적일 수 있습니다.
●한국경제가 나아갈 길
▽김훈=기업들이 수출로 벌어들인 돈을 국내에 투자하지 않기 때문에 내수경기가 회복되지 않는다는 얘기가 많습니다.
▽이유나=수출로 큰돈을 벌어들이는 기업이 소수의 대기업에 집중돼 있기 때문에 내수에 미치는 영향이 적은 것은 아닐까요?
▽이 교수=미국에서도 ‘고용 없는 성장’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기술발전 덕에 적은 인력으로 더 많은 제품을 생산할 수 있기 때문에 경제가 성장해도 고용이 늘지 않는다는 겁니다. 앞으로 한국경제의 미래는 중소기업에 달려 있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기업 규모보다는 산업의 크기가 더 중요해요. 국제교역의 비교우위는 부존자원이 아니라 동종 산업체가 모여 시너지효과를 내는 ‘산업클러스터’를 통해 생산성이 높아질 때 가능하다는 얘기입니다.
정리=박 용기자 parky@donga.com
▨글로벌 경제 이해를 돕는 책
▽맨큐의 경제학(그레고리 맨큐 지음·교보문고)=상호의존관계와 교역의 이득 등 복잡한 경제원리를 실제 사례를 통해 쉽게 풀이한 경제학 개론서.
▽The Choice-자유무역과 보호주의, 도전할 것인가 도망칠 것인가(러셀 로버츠 지음·생각의 나무)=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을 소설 형식으로 풀어쓴 책.
▽동북아로 눈을 돌리자(남덕우·삼성경제연구소)=‘동북아 물류 비즈니스 중심 국가’의 개념과 내용을 풀어 쓴 해설서.
▽팝 인터내셔널리즘(폴 크루그먼 지음·한국경제신문사)=기초적 경제이론을 무시하고 부인하며 경제의 대중국제주의(pop internationalism)를 주장해 온 이론가들을 반박.
▽세계화의 역사(케빈 오록 지음·한국문화사)=경제사적 분석틀을 통해 세계화를 체계적으로 설명.
▨용어풀이
절대우위론 : 애덤 스미스가 1776년 저서 ‘국부론(Wealth of Nations)’에서 주장한 국가간 무역이론. 두 나라가 각각 더 적은 노동력을 투입해 생산할 수 있는 상품(절대우위를 갖는 상품)을 특화해 교역함으로써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 수출을 권장하고 수입을 억제해야 한다는 중상주의 무역관에 대한 반박.
비교우위론 : 고전경제학파인 영국의 데이비드 리카도가 주장한 근대 무역이론. 절대우위론의 약점을 보완해 한 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 모든 재화에서 절대우위에 있더라도 상대적으로 생산비가 덜 드는 상품(비교우위가 있는 상품)을 생산해 교역하는 게 유리하다고 설명하는 이론. 예를 들어 A국이 B국보다 전자제품의 생산성은 10배, 섬유제품은 2배가 높다면 A국은 전자제품을 생산하고 B국에서 섬유제품을 수입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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