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통장 거래조건 꼭 확인을…절반이상 이율 등 표시 불명확

  • 입력 2004년 6월 17일 17시 47분


시중은행들이 상당수 예금통장에 이율 관련 사항을 제대로 표시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아래 통장은 이율과 적용방식이 명확히 표시된 반면 위 통장은 어떤 기준으로 변동금리가 적용되는지 알 수 없게 돼있다. 사진제공 한국소비자보호원
시중은행들이 상당수 예금통장에 이율 관련 사항을 제대로 표시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아래 통장은 이율과 적용방식이 명확히 표시된 반면 위 통장은 어떤 기준으로 변동금리가 적용되는지 알 수 없게 돼있다. 사진제공 한국소비자보호원
1999년 12월 A은행의 장기주택마련저축에 가입한 김모씨(30)는 올해 1월 통장 정리를 하다가 깜짝 놀랐다. 이자율이 연 10%인 고정금리 상품으로 생각하고 그동안 500만원을 저축했는데 난데없이 ‘이자율이 연 5.2%로 내렸다’는 내용이 통장에 찍힌 것.

김씨는 은행 직원을 찾아가 항의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변동금리 상품에 가입했고 그동안 이자율이 계속 내렸는데도 은행이 통보해 주지 않았음을 알았다. 은행 직원은 “가입할 때의 상품설명서와 약관에는 자세한 내용이 써 있다”고 관련 서류를 내밀었다.

김씨는 “통장에는 가입할 당시의 이자율인 ‘연 10.0%’만 써 있어 고정금리라고 생각했다”며 “속은 것 같아 기분이 나쁘지만 지금 해지하면 낮은 이자율이 적용되고 비과세 혜택도 받을 수 없어 그럴 수도 없다”고 푸념했다.

은행이 예금통장에 이자율 등 가장 중요한 거래조건을 제대로 적어놓지 않아 고객의 불만을 사고 있다. 한국소비자보호원은 17일 “국내 11개 은행의 통장 87개를 조사한 결과 상당수가 이런 ‘바보 통장’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자율 제대로 안 적은 통장 절반=우선 이자율 표시가 모호한 경우가 많았다. 소보원에 따르면 이자율을 꼭 써야 하는 종류의 61개 통장 가운데 절반을 넘는 33개 통장이 정확하지 않은 방법으로 이자율을 표시했다.

대부분 ‘연’ 또는 ‘%’ 부호를 표시하지 않은 경우였다. ‘은행업 감독규정 시행세칙’에 따라 이자율을 ‘연 ○○%’라고 명확하게 표시하도록 돼 있는 적립식 예금통장 가운데 아무런 표시가 없는 것도 두 개나 됐다.

김씨의 사례처럼 변동금리인 경우에는 문제가 더 복잡하다. 변동금리가 적용되는 47개 통장 가운데 12.8%인 6개가 변동금리임을 명시하지 않았다. 이자율이 어떤 기준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제대로 쓰지 않은 경우도 각각 76.6%와 25.5%였다.

기타 ‘특별한 거래 조건’이 생략된 경우도 많았다. 해당 통장 42개 가운데 절반이 “평균 잔액이 10만원 미만인 경우 이자를 지급하지 않는다”는 등의 안내를 생략했다고 소비자보호원은 지적했다.

▽소보원 개선 권고에 은행은 억울=소보원 황기두(黃基斗) 금융팀 과장은 “고객은 예금통장에 자신이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정보가 모두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며 “2002년 이후 올해 1월까지 관련 민원 68건이 접수됐다”고 말했다. 소보원은 이번 조사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해당 은행에 통보해 문제를 자율적으로 개선하라고 권고했다. 더 구체적이고 정확한 정보를 통장에 명시하라는 것이다. 또 관련 규정을 보완하라고 공정거래위원회 등에 건의할 예정이다.

하지만 은행 관계자는 “고객이 예금에 가입하기 전 충분히 설명을 하고 또 약관에 자세한 내용을 기재한다”며 “전자통장이 나오는 마당에 길고 긴 약관 내용을 모두 통장에 넣을 수는 없는 일”이라고 해명했다.


신석호기자 kyle@donga.com

정재윤기자 jaeyu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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